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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6, 2010

축구 전술

피라미드부터 카테나치오까지

현대축구의 전술은 지난 한 세기에 걸친 꾸준한 발전 및 시행착오의 반복에 힘입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월드컵은 이러한 한 세기 동안의 전술적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다. 세계 축구의 강호들이 승리에 웃고 패배에 울어야 했던 이유도 모두 전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 장대한 역사의 시작은 지금 보면 조금 우스꽝스러운 형태인 ‘피라미드 시스템’에서부터 출발한다.





피라미드 시스템과 메토도 시스템

축구 규칙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정립된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의 지도자들은 11명의 선수들을 한 팀으로 조직화시키기 위해 축구 경기에 ‘포메이션(Formation, 포진)’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피라미드 시스템(2-3-5)이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주목 받으며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포메이션은 20세기 초반을 지나 1930년대까지도 세계 축구의 보편적인 전술로서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피라미드 시스템





2명의 수비수(풀백), 3명의 미드필더(하프백), 그리고 5명의 공격수를 3선에 걸쳐 배치하는 이 포메이션에는 보이는 그대로 매우 공격적인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19세기 말~20세기 초반의 지도자들이 “축구는 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경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에 충실했음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그 당시 감독들의 전술은 수비보다 공격을 잘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930년대에 치러진 제1회(1930년), 2회(1934년), 3회(1938년)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선에 출전한 대부분의 팀들은 피라미드 시스템을 바탕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고, 그 외의 포메이션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다. 단, 1934년 대회와 1938년 대회를 2연패한 이탈리아의 경우 조금 변형된 포진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는데, 명장 비토리오 포쪼 감독이 사용한 이 전술은 오늘날 메토도 시스템(2-3-2-3)으로 불리며 피라미드 시스템과 구분되고 있다.





메토도 시스템





포쪼 감독이 피라미드 시스템에 수정을 가한 이유는 간단하다. 2-3-5는 최전방에 지나치게 많은 선수들이 밀집되어 있는 형태인 만큼 중원이 엷어지기 쉬웠고, 또 3명의 하프백이 넓은 활동범위를 가져가지 못하면 연쇄적으로 수비까지 붕괴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로 인해 포쪼 감독은 5명의 공격수 중 2명을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로 내리는 한편, 3명의 하프백으로 하여금 수비 쪽에 좀 더 무게를 두도록 했다.



이러한 메토도 시스템은 공수 밸런스라는 측면에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나타냈다. 특히 ‘공격수+미드필더’ 스타일의 주세페 메아짜는 메토도 시스템의 인사이드 공격수 위치에서 오늘날의 플레이메이커와 같은 역할을 수행, 이탈리아의 월드컵 2연패에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 이처럼 메토도 시스템이 피라미드 시스템을 압도한 이후, 영국에서는 그보다 발전된 형태인 WM 시스템이 빠르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WM 시스템

20세기 초, 영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두 걸음 이상 앞서 나가며 빠른 속도로 축구 전술을 발전시켰다. WM 시스템 역시 영국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피라미드 시스템을 한층 발전시켜 WM이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 인물은 아스널의 허버트 채프만 감독이었다.



WM 시스템(3-2-2-3)은 메토도 시스템(2-3-2-3)에서 하프백 한 명을 줄이는 대신 수비수 한 명을 늘린 좀 더 균형 잡힌 형태다. 이 한 명의 수비수에겐 센터백이란 호칭이 붙여졌고, 기존의 풀백 두 명은 측면 쪽으로 넓게 벌려 이전보다 두터운 수비벽을 구축했다. 수비진 정 가운데 위치에서 리더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는 센터백은 상대 팀 센터포워드를 전담 마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WM 시스템





WM 시스템의 밸런스는 피라미드 시스템이나 메토도 시스템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공격진에 5명, 수비진에 5명을 배치함으로써 보다 안정된 공수 밸런스를 이끌어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한 역할분담 또한 훨씬 더 명확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1940~50년대에는 거의 모든 팀들이 WM 시스템을 붕어빵처럼 사용하기 시작했고, 한 팀의 ‘W’를 상대 팀의 ‘M’이 전담마크 하는 형식으로 공수 공방이 이루어졌다. 월드컵 무대에서는 12년 만에 재개된 1950년 대회에서 WM 시스템이 크게 유행한 바 있으며, 1954년 대회와 1958년 대회에 참가한 많은 팀들도 WM의 범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MM 시스템과 4-2-4

195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매직 마자르’ 헝가리는 WM 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난 최초의 팀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헝가리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구스타프 세베스 감독은 “상대 팀 선수 1명을 아군 1명이 상대함으로써 철저한 역할 분담을 이끌어낸다”는 WM 시스템의 기본 원리에 일찍부터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철저한 1:1 전담 체제를 통해 보다 안정된 공수 밸런스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경기를 마음먹은 대로 이끌어 가기엔 축구는 너무 변화무쌍했다.



세베스 감독은 WM 시스템의 기본 원리를 뒤집어 생각함으로써 그 파해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즉, 철저한 1:1 전담 체제를 통해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전술을 바탕으로 2:1, 3:1과 같은 수적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상대 팀의 1:1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WM 시스템의 파해법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세베스 감독은 WM 시스템을 개량하여 MM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는 한편, 공격진에 ‘포지션 체인지’라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시켰다.





MM 시스템





세베스 감독의 MM 시스템에서 센터포워드에게 주어진 임무는 미드필드 깊숙한 지역까지 내려오거나 측면으로 넓게 벌림으로써 상대 팀의 센터백을 박스 바깥쪽으로 끌어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히데쿠티가 만들어낸 공간을 인사이드 공격수인 페렌츠 푸스카스와 코치슈, 혹은 윙포워드 치보르가 유기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헝가리 공격 전술의 핵심 포인트였다. 그 결과 ‘MM’ 헝가리는 ‘WM’ 잉글랜드를 웸블리에서 6-3으로 완파(1953년)하며 전 세계 축구계에 충격을 가져다줬다.



한편 1954년 월드컵의 헝가리 팀을 유심히 지켜 본 브라질 출신 지도자들은 이 전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은 헝가리 측과 활발히 교류하는 한편, 세베슈 감독과 구트만 감독이 기초를 다져놓은 4-2-4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헝가리 출신 지도자들은 “WM 시스템의 파해법이 MM 시스템의 포지션 체인지라면, 그 MM 시스템의 포지션 체인지에 대한 수비적인 대비책도 반드시 준비해둬야 한다” 며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세베스와 구트만을 비롯한 헝가리 지도자들이 도출해낸 결론은 “포지션 체인지는 대인방어가 아닌 지역방어로 대처해야 한다.”였다. 왜냐하면 한 명의 선수가 다른 한 명의 상대 선수를 철저히 전담 마크하는 대인방어 체제에서는 기술적 열세를 극복해내기가 쉽지 않았고, 상대 팀의 콤비 플레이에 공간을 내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비수들이 상대 선수가 아닌 자신이 맡은 일정 범위의 지역을 기준으로 움직인다면, 상대 팀의 다양한 공격 방법에도 수비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훨씬 더 용이했다.





4-2-4 시스템





브라질의 페올라 감독은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4-2-4 시스템을 완성시켰다. 수비진에 3명이 아닌 4명의 수비수를 포진시킴으로써 지역방어 체제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한편, 2명의 미드필더(더블 볼란테)는 상대 진영과 자기 진영을 부지런히 오가는 움직임을 통해 공수 양면에 걸쳐 수적 우위를 만들어냈다. 결국 브라질은 4-2-4를 바탕으로 1958년 월드컵과 1962년 월드컵을 2연패하며 세계 축구의 전술적 패러다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 국가들은 1950년대 후반 들어 브라질이 세계 최강으로 떠오르자 4-2-4를 빠르게 받아들여 WM 시스템의 한계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킨 장본인은 ‘4-2-4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헝가리 출신의 벨라 구트만 감독이었다. 구트만 감독은 포르투갈의 벤피카를 60/61, 61/62 시즌 챔피언스컵 2연패로 이끌며 레알 마드리드의 ‘저승사자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4-2-4 축구를 바탕으로 새 역사를 창조해냈다.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

브라질 대표팀과 벤피카의 영향을 받아 4-2-4는 빠르게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일찍부터 수비적인 전술로 ‘이기는 축구’를 표방해 온 이탈리아는 공격적인 4-2-4를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그 파해법을 연구해나갔다. 이 노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건너와 인테르의 지휘봉을 잡은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에 의해 집대성됐다.



헝가리 축구의 기본 골격을 이어받은 브라질 4-2-4의 기본 바탕은 ‘포지션 체인지에 기초를 둔 자유로운 공격’이었다. 이에 헝가리와 브라질 지도자들은 “지역방어로써 포지션 체인지에 대처한다”는 수비적 해답을 찾아냈지만, 에레라 감독과 이탈리아 지도자들의 접근 방법은 180도 달랐다. 이들이 찾아낸 해답은 ‘대인방어와 지역방어의 혼합’이었다.



예를 들어 WM 시스템의 고전적인 1:1 대인방어로는 역대 최고의 수비수들을 모아놓지 않는 한 브라질의 4-2-4를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펠레, 가린샤, 바바와 같이 뛰어난 개인기를 갖춘 공격수들을 1:1로 제어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 팀 입장에서는 2:1 수적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4-2-4의 공격을 틀어막아야 했는데, 에레라 감독은 이를 위해 ‘리 베로(Libero)’라는 역할의 최후방 수비수를 포백 라인 뒤에 따로 포진시켰다. 리베로는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카테나치오





즉, 에레라 감독은 4-2-4의 공격수 4명을 수비수 4명에게 대인마크시키는 한편, 최후방에 리베로를 추가로 배치함으로써 2:1 수적 우위를 만들어 내거나 유사 시 커버 플레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아군 수비수가 상대에게 돌파를 허용하거나 움직임을 놓칠 경우에도 리베로가 빠르게 2차 수비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리베로의 존재로 인해 에레라 감독의 인테르는 1-4-3-2(5-3-2) 혹은 1-4-4-1(5-4-1)과 같은 형태를 나타냈다. 또,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 전술에 “빗장으로 골문 앞을 걸어 잠근다”는 뜻의 ‘카테나치오(Catenaccio)’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테나치오는 기대 이상으로 효과적이었고, 인테르에게 63/64, 64/65 시즌 유럽 챔피언스컵 2연패라는 영광을 가져다줬다. 이탈리아 대표팀 역시 1966년 월드컵에서는 북한에 발목을 잡혀 고배를 들이켰지만, 유로 1968 우승을 통해 카테나치오의 위력을 전 유럽에 알렸다.



한편 이탈리아 이외의 유럽 국가들은 브라질과 벤피카의 4-2-4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보다 거칠고 스피드 위주의 스타일을 갖고 있던 유럽 국가들의 경우 두 명의 미드필더만으로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로 인해 1960년대 중반 들어서는 4-2-4에서 미드필더 한 명을 늘린 4-3-3 형태가 유럽 팀들의 보편적인 밑그림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66년 월드컵의 잉글랜드, 서독, 소련 등이 가장 대표적인 팀들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1960년대 후반 들어 세계 축구의 패러다임이 4-3-3 쪽으로 흘러가자 카테나치오의 밑그림을 1-4-3-2(혹은 1-4-4-1)에서 1-3-3-3으로 변형시켰다. 이탈리아 역시 4-3-3을 기본 포메이션으로 활용하긴 했지만, 최후방에 리베로를 두는 카테나치오 전술로 인해 실제로는 1-3-3-3과 같은 형태를 나타냈던 셈이다.



1970년 월드컵 결승전은 공격축구를 대표하는 브라질의 4-2-4(혹은 변형 4-3-3)와 수비축구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가 맞붙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경기 결과는 브라질의 4-1 완승이었고, 카테나치오는 이 패배 후 급속도로 쇠락하며 유럽 축구의 주류로부터 벗어나고 말았다. 반면 네덜란드는 헝가리와 브라질의 공격적인 전술을 적극적으로 도입, ‘토털풋볼’이란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며 1970년대를 지배하게 된다.

http://navercast.naver.com/commonsense/worldcup/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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