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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31, 2011

코피나는 원인, 어른과 아이가 다르다고?

코피는 감기와 함께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생활속 질환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코피를 멎게 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설과 민간요법이 존재한다. 정부공식블로그 정책공감은 31일 국민보험공단의 자료를 인용, 코피질환의 원인 및 지혈 방법 등 코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했다. 코피가 나오는 원인으로는 크게 물리적 자극에 의한 외상, 감염 등에 의한 염증질환, 혈우병, 백혈병, 혈소판 감소증 등의 혈액 질환 그리고 고혈압, 간장 질환 등의 순환장애가 있다. 그 밖에 급성 열병, 급격한 기압변동, 종양 등의 원인도 있으나 가장 흔한 것은 코를 후비거나 급만성 비염이 있을 때 나타나는 외상에 의한 경우다. 어린 아이들의 코피 원인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어른의 경우도 외상에 의한 경우가 많지만 고혈압과 간질환에서 동반되는 경우도 많다. 또 외상에 의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비중격 만곡증, 비용종(콧속에 생기는 물혹) 드물게 악성 종양 등의 원인이 함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반복될 경우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다. 코피 지혈 방법은 어린아이와 어른의 경우 차이가 있다. 어린아이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코의 앞쪽에 혈관이 모여 있는 곳에서 코피가 나오는 것이므로 코를 세게 풀지 않도록 하고 솜뭉치를 비교적 크게 만들어 콧속에 넣고 콧등의 아래쪽에 있는 연골부위를 압박하는 것이 좋다. 또 머리를 앞으로 숙이게 한 후 몇 분간 기다리면 대개 지혈되거나 코피 양이 줄게 된다. 압박과 동시에 코에 얼음이나 찬물을 이용한 찜질을 하는 것도 코피를 멎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른의 경우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지혈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개를 숙였음에도 피가 목으로 넘어가거나 넘어가는 코피의 양이 점차 줄어들지 않을 때에는 고혈압이나 간질환과 같은 원인질환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병원에 가게 되면 주로 터지는 부위를 10% AgNO3, 전기소작기나 레이저로 치료하게 된다. /umw@fnnews.com 엄민우기자


http://www.fnnews.com/view_news/2011/08/31/110831170101.html

Bed bugs protect their sperm from bacteria

Bed bugs protect their sperm against 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s by producing germ-busting ejaculates, scientists have found.

Bacteria covering bed bugs' bodies are transmitted to the female, along with the sperm, during mating.

The new work shows that without the protection of antibacterial agents in the bug's ejaculate, 40% of sperm die.

Bed bug (R Naylor, U Sheffield)
(The male bed bug stabs the female with his penis and injects sperm, infecting her with bacteria)



The results were presented at the 13th Congress of the European Society for Evolutionary Biology.

Bed bugs, and the related bat bugs that live in African caves, are renowned for their bizarre sex lives.
'Traumatic insemination'

Males, instead of penetrating the female's vagina, pierce her underside and deposit sperm inside the female, where it swims through the insect's blood system to the ovaries to fertilise the eggs.

Female bed bugs protect themselves against the diseases that males transmit with a structure on their bellies that guides the penis into a mass of germ-fighting cells.

Males, it seems, have also evolved a way to fend off the effects of 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s, evolutionary biologist Oliver Otti from the University of Sheffield, UK, told conference attendees in Germany.

Wounding is a very frequent event during and after copulation, and generally genitals are not that clean”

Oliver Otti University of Sheffield

Suspecting that males load their ejaculates with proteins that protect sperm, Dr Otti carefully extracted sperm from a number of male bed bugs, being sure not to mix it with the seminal fluid that usually makes up the rest of the ejaculate.

He then mixed the sperm with a "soup" of micro-organisms that he had collected from the outer skin of the bed bugs.

To half of these samples he added lysozyme, a bacteria-killing enzyme known to be active in bed bugs, and saw that 40% more sperm survived in its presence.

Females didn't gain any protection from these introduced bacteria-busting enzymes, he explained; the presence of lysozyme in the ejaculate seemed to be purely to protect sperm.

But other work by Dr Otti's colleague Michael Siva-Jothy, who is also based at the University of Sheffield, shows that females protect themselves from the infections introduced during sex with their own lysozymes.

In fact, females ramp up their lysozyme activity just before they are about to feed. Dr Siva-Jothy explained that this is probably because in the bed bug world, feeding is generally always followed by mating.

"Wounding is a very frequent event during and after copulation, and generally genitals are not that clean, " Dr Otti told BBC News.

He explained that the research that has focused on human sexual transmitted diseases has tended to ignore the microbes that coexist with us on our skin; these microbes are likely also transferred during sex.

"It is not clear what the cost of having them around is," Dr Otti added.

The advantage of studying bed bugs, he said, is that we share many components of our immune system. As a result, scientists can learn much from manipulating the bugs' sex lives to study the consequences on lifespan and offspring production - some of these trade-offs could be relevant to humans.


http://www.bbc.co.uk/news/science-environment-14716106

Tuesday, August 30, 2011

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

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 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2. 중국의 '중국 고금 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 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다시 되새김질 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6.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 조선 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 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 되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 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많이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
륙의 장안(시안)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 있어야한다.


21. 조선 초 인구가 370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 있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 되어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 밖에 없다.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48.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명사, 선조실록, 난중일기, 이순신전서, 임진전란사, 은봉야사별록 등) 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명, 상황전개, 위치, 방위, 거리 및 전후사정이 한반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52. 어제신도비명 에 보면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여러길로 나눠 서쪽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반도라면 당연히 북상 하는 것이 옳다.


53.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4.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55.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56. 조선의 중심지는 낙양이라고 쓰고있다. 한반도에는 낙양이라는 지명은 단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낙양은 중국의 천년고도의 도시이다.


57. 세스페데스라는 포르투갈 신부가 16c 에 쓴 책에 의하면 꼬라이 또는 꼬리아라는 왕국은 일본에서 10일정도 걸리며 왕국의 끝은 티벳까지 달한다고 씌여있다.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조선대륙의 강들은 수량이 풍부한데 강의 폭이 3레구아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58. 루이스 프로이스 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씌여있다.


59.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의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라는 고문헌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슬프다! 후세에 만약 이 책을 붙잡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나 죽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리라!"

-北崖子의 <규원사화> 서문 中에서.

Chocolate and laugh are beneficial for heart disease



A study presented at the European Society of Cardiology’s conference in Paris has found that dark chocolate and laugh are both good for heart health, reported Huffington Post and the Daily Mail on Tuesday.

Dr Oscar Franco and his colleagues at Cambridge University found that eating at least two pieces of chocolate a week is linked to a 37 percent drop in the chances of developing cardiovascular disease. Those who indulged also saw a 29 percent fall in the risk of stroke compared with those who ate fewer than two squares a week, the Daily Mail reported.

However, the researchers did not give details of how much or how often people should eat chocolate. Regarding this, Huffington Post recommend that dark chocolate is better than milk one, saying that the latter contains too much sugar which can cause heart diseases.

On the other hand, other researchers at Maryland University suggested that laugh is better than chocolate for heart disease. They said that if people laugh, their vessels will be expanded, which makes blood flow increasing.

Dr. Michael Miller, who leads this research, aired “Saving Private Ryan,” to find out that volunteers responded with a constriction of the blood vessel linings, causing a reduction in blood flow. When those same people watched clips of the comedy, “There’s Something About Mary,” the linings actually expanded.


http://www.koreatimes.co.kr/www/news/tech/2011/08/325_93821.html

깊은 수면 짧으면 고혈압 위험 높아

가장 깊은 수면이 이루어지는 `서파 수면`이 짧으면 고혈압이 나타날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 대학 브리검 여성병원의 수면의학 전문의 수전 레드라인 박사는 노인수면장애연구 참가자 784명의 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파수면이 가장 짧은 그룹이 가장 긴 그룹에 비해 고혈압 발생률이 평균 80% 높았다고 밝힌 것으로 헬스데이 뉴스가 29일 보도했다.

연령, 인종,체중 등 다른 고혈압 위험인자들을 고려했지만 이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잠이 들면 혈압은 내려가는 게 정상이고 특히 서파수면 중 혈압이 가장 많이 내려가지만 서파수면이 짧으면 고혈압 위험이 커지는지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레드라인 박사는 말했다.

수면은 크게 렘수면(REM: rapid eye movement)과 비(非)렘수면으로 이루어지며 비렘수면은 뇌파의 종류에 따라 4단계로 구성되는데 이 중 3-4단계가 서파수면이다.

서파수면은 가장 깊은 수면으로 신체적 재충전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로 알려져 있다.

레드라인 박사는 서파수면 시간이 아이들의 경우 전체수면의 약 40%를 차지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짧아져 성인이 되면 25%로 줄어든다면서 조사대상 노인들은 서파수면 시간이 평균 11.2%이었다고 밝혔다.


http://cast.wowtv.co.kr/20110830/A201108300164.html

초콜릿 먹으면 심장병·당뇨·뇌줄중 덜 걸린다

한 때 최음제 기능을 하던 것으로 알려졌던 초콜릿이 이번에는 심장병 발병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초콜릿을 매일 꾸준히 먹으면 심장병뿐만 아니라 당뇨병·뇌졸중에 걸릴 확률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진은 최근 초콜릿과 심장병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초콜릿을 꾸준히 먹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 발병 위험이 37% 줄어드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영국의학저널(BMJ)을 통해 밝혔다. 뿐만 아니라, 당뇨병에 걸릴 확률은 31%, 뇌졸중에 걸릴 확률도 29%나 줄어들었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초콜릿 관련 연구 7개를 다시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구진은 당시 연구 대상자 10만여명을 분석했고, 이들 중 초콜릿을 꾸준히 먹은 사람이 보통 사람들보다 각종 질병에 덜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만, 29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초콜릿의 어떤 성분이 심장병을 줄이는 역할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얼마나 초콜릿을 먹어야 하는지, 먹어야 하는 초콜릿이 어떤 종류인지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연구의 분석 대상이 됐던 사람들은 캔디, 드링크, 디저트, 영양제 등 다양한 형태로 초콜릿을 먹었다.

연구진을 이끈 오스카 프랑코 박사는 “초콜릿이 질병 예방에 좋은 것은 맞지만, 무조건 초콜릿을 많이 먹으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당부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30/2011083001288.html

Monday, August 29, 2011

일본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백제에서 보내준것

도쿄대학 건축사학과 오타 히로타로(太田博太郞) 교수와 도쿄교육대학 미술사학과 마치다 고이치(町田甲一)교수는 공저에서 "미륵상은 광륭사 사찰 기록에 따르면 스이코왕(592∼628) 11년(603년)에 백제에서 보냈다.”라고 한다. 또한, 고니시 아키오(小西秋雄)도 미륵상은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하다씨 백제 성씨

갤로거 곤도로고츄

제 목 진한은 확실이 진나라 도망온 유민이다.

예전에 관련 기록을 올린적 있는데

응신천황조의 궁월군 기록은 백제인이라고 기록되어있지만 관련 기록으로 보면 진한인일 가능성이 있는데

일본 귀화후 신찬성씨록에 하다씨라고 기록되어있고 자기 나라 조상이 진시황이라고 구라뻥카를 치고 있음

바꿔 생각하면 진시황밑에서 노역하던 노예놈이 마한 진한을 거쳐 일본에 들어가서 내 조상은 지시황이다 위대하다 라며 구라치는거같다.

‘잡스의 혁신’ 세상을 10번 놀라게했다

마우스 도입한 ‘매킨토시’
직영 매장 ‘애플스토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35년동안 IT업계 선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밝힌 이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선 그동안 잡스가 세상에 선보인 제품들의 면면을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혁신적 기업가’, ‘뛰어난 마케터’를 넘어, 스티브 잡스는 세계 정보기술 산업 전반의 지형을 뒤흔들고 동시대인들의 생활 방식을 바꾼 인물로 오래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손에 의해 탄생한 대표적 상품들을 꼽아본다.

1. 애플 1(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이 애플컴퓨터를 설립한 해에 내놓은 첫 작품이다. 워즈니액이 제품 개발을, 잡스가 자금조달과 마케팅을 총괄했다. 개인용 컴퓨터로 출시됐지만, 실제로는 일부 전문가들만 사용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님에도 애플발 혁신 시리즈의 출발점으로 기록된다.

2. 애플 2(1977년) 애플 1을 내놓은 이듬해 나온 애플 2는 베이지색 외관에 컬러 그래픽이 가능한 1300달러짜리 제품으로, 대중시장을 겨냥한 작품이다. 비로소 전문가뿐만 아니라 개인 사용자들로부터도 높은 인기를 끌었으며, 애플에 첫 번째 상업적 성공을 안겨준 제품으로 꼽힌다. 1993년까지 16년간 생산됐다.

3. 매킨토시(1984년) 잡스가 제록스연구소를 방문했다가 본 그래픽 사용자환경(GUI)을 적용하고 마우스를 도입한 컴퓨터로, 이후 컴퓨터 사용환경에 일대 혁신을 불러온 역작이다. 2500달러에 판매됐다. 특히 출판계에 널리 도입돼 데스크톱 출판의 기본 환경으로 자리잡았다.

4. 아이맥(1998년)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가 1996년 복귀해 만들어낸 첫 제품이다. 컴퓨터 시장에서 점유율이 줄어들면서 고전하던 애플의 상황을 한순간에 반전시킨 히트작이다. 기능보다는 과감한 디자인으로 혁신을 가져왔다. 원색을 사용하고 본체와 모니터를 결합한 일체형으로, 인터넷 환경에 맞췄다.

5. 애플스토어(2001년) 전자제품 구입 행태가 브랜드별 직영매장에서 베스트바이 같은 양판점과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와중에, 애플은 주요 도시 요지에 직영매장을 열었다. 제품 판매뿐 아니라 고객기술 지원을 하는 애플스토어는 독특한 건물과 내부 디자인으로 많은 도시에서 관광명소가 되었고, 경쟁업체들은 잇따라 모방에 나섰다.

6. 아이팟(2001년) 분명 디지털음악재생기(MP3)로 처음 출시된 제품이 아니다. 하지만 휠을 이용한 간편하고 직관적인 조작법과 음악관리 소프트웨어와의 결합으로 인해 순식간에 관련 시장을 제패했다. 휴대용 기기 아이팟의 성공은 아이폰과 아이튠스, 아이패드, 앱스토어의 모태 노릇을 했다. 애플이 컴퓨터를 넘어 콘텐츠산업과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7. 아이튠스(2001년) 아이팟의 음원 관리용 도구로 선보였으나, 애플의 다양한 모바일 기기와 콘텐츠를 관리하는 핵심도구가 됐다. 하드웨어 운영체제의 손쉬운 업그레이드는 물론, 뮤직스토어, 앱스토어, 북스토어 등 애플이 미래에 출시할 제품과 콘텐츠까지도 연계되도록 설계됐다. 애플 사용자로 하여금 지속적인 구매에 이르도록 하는 촉매제 구실도 했다.


8. 아이폰(2007년) 애플이 내놓은 터치식 스마트폰으로, 이후 앱스토어와 결합해 스마트폰 혁명을 이뤄낸 기념비적 제품이다. 출시 당시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컴퓨터도 제대로 못 만드는 애플이 전화기를 만든답니다”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이후 아이폰 3G, 아이폰 4로 이어지면서 갈수록 영향력이 커졌고, 통신 시장구조와 사용자 환경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9. 앱스토어(2008년) 전세계 개발자들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판매하도록 한 콘텐츠 장터로, 아이폰과 아이패드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아이폰 출시 1년 뒤 나왔으며, 아이폰을 기존의 스마트폰과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만들었다. 매출은 개발자와 애플이 7:3으로 나누며,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안겨줬다.

10. 아이패드(2010년) 아이폰과 같은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기능적으로도 유사한 태블릿피시(PC)다. ‘화면 커진 아이폰’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숱한 업체들이 도전했다가 실패한 태블릿 시장을 제패했다. 미국에서 출시 첫날에만 30만대가 팔렸고, 6개월 만에 판매량이 600만대를 넘어섰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http://www.hani.co.kr/arti/economy/it/493874.html

아마존 강 밑에 '지하 아마존 강' 흐른다

지하 4㎞에서 아마존 강보다 수백 배 폭으로 느리게 흘러

브라질 과학자들 국제 학술대회서 발표, 지상의 강과는 성격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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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아마존 강 하구의 모습.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거대한 강이 대서양에 합류하고 있다.

남한 면적의 70배에 이르는 유역을 통해 세계 최대의 유량을 대서양에 쏟아붇고 있는 아마존 강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비밀이 밝혀졌다. 아마존 4000미터 지하에 느리지만 폭은 아마존 강보다 수백배 넓은 '지하 아마존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발리야 함자 브라질 국립관측소 지구물리학자 등 브라질 과학자들은 지난 15~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라질 지구물리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아마존 강 밑에 지하 강이 있는 징후"라는 발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이들은 브라질의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가 1970~1980년대 뚫어놓은 241개의 관정의 수온을 바탕으로 한 모델링을 통해 지하 강의 존재를 알아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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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가 지상의 강을 통하지 않고 바다로 흘러드는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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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강의 얼개. 아마존 강 4㎞ 지하에서 아마존 강의 유로를 따라 흐른다. 출처=함사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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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아마존 강의 형성 과정. 다공성 상부 지층을 따라 모인 지하수가 지하 4㎞에 형성된 불투수층을 따라 대서양 쪽으로 흐른다. 출처=함사 발표문.

지하 강은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서 시작되는데, 물은 지하 2000미터까지 수직으로 내려간 뒤 아마존 강의 궤적을 따라 대서양을 향해 흐른다는 것이다. 지하 강은 물이 잘 침투하지 못하는 불투수층이 나타나는 지하 약 4000미터 깊이에서 아마존 강보다 약간 짧은 6000킬로미터를 흐른 뒤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연구진은 이 강을 연구책임자의 이름을 따 '리우 함자'라고 불렀는데, 지상의 아마존 강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마존 강의 강폭은 1~100킬로미터이지만 이 지하 강은 200~400킬로미터로 훨씬 넓다.

반면, 유속은 지상의 강이 초속 0.05~5미터인데 견줘 1억분의 1~10억분의 1미터, 다시 말해 연간 3~30센티미터밖에 흐르지 않는다. 유량도 아마존 강이 초당 13만 3000입방미터이지만 지하 아마존은 3900입방미터로 훨씬 적다. 물론 이 유량도 한강 8개를 합친 양이어서 절대적으로 적지는 않다.

따라서 '지하 아마존 강'은 우리가 흔히 아는 강과는 다르다. 함자도 이를 분명히 해, "지하 아마존 강은 전통적인 의미의 강이 아니라 다공질 암석과 사암을 통해 지하수체가 서서히 흐르는 것"이라며 "강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기도 하다"고 말한 것으로 <네이처>의 뉴스블로그에서 마크 페플로우가 전했다.

연구진은 발표문에서 지하 2000미터까지는 지하수가 아래로 흐르는 다공질이고 지하 4000미터에서는 불투수층이 있어 지하수가 고여 대서양 쪽으로 흐르는 아마존 유역의 지질 특성이 이런 '지하 강'을 형성시킨 원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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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강의 유역. 남한 면적의 70배에 이르는 세계 최대 강 유역으로 세계 전체 강물의 5분의 1이 이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지하 아마존 강까지 합치면 그 비중은 훨씬 커진다.

연구진은 이런 지하 강에 어떤 생태계가 형성돼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지하 강이 얕은 쿠스코 지역에서는 지하수를 퍼 식수와 농사용으로 오래 전부터 써 왔으며, 아마존 강 하구의 염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가 지하 강의 희석 효과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다량의 지하수가 지상의 강이 아닌 지하에서 직접 바다로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석회암 지역에서는 지하의 동굴과 함몰지에서 강물이 지하로 흐르기도 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http://ecotopia.hani.co.kr/21656

Sunday, August 28, 2011

beautiful landscape of korea













1. 비둘기낭폭포
2. 성산 일출봉
3. 진주 촉석루
4. 가을을 맞이한 설악산
5. 한강, 서울(seoul, hangan)





유럽인의 힘

갤로거 Judo~




학교특성상 아주가끔 외국인애들이랑 운동할때도 많은데 그냥 일반적인 흑인피지컬을 그렇게 두려워할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짜 무서워할애들은 유럽백인들임

흑인들 탄력이 좋은거지 근력은 그렇게 뛰어나지않음 유럽애들은 진짜 힘으로 제압당한다는게 어떤건지 잘 느낄수있다


dcinside 퍼옴

5 toxic chemicals you should banish from your home

EMMAUS, PA — Cleaning house doesn’t mean nasty chemicals have to pollute your home. Your next home cleaning campaign or daunting do-it-yourself projects can be done without poisoning the air or tainting your local water supply. Most of our safer alternatives will even save you money, too.

Image: woman holding soap
Featurepics
Good, old-fashioned soap and water will kill just as many germs as the antibacterial stuff -- and it won't disrupt thyroid function or harm aquatic life, as some antimicrobial cleansers do.


Here are five chemical culprits to kick out of your house—and the nontoxic options that should move in instead.


1. Coal-tar driveway sealant: If you plan to seal your blacktop driveway this spring, avoid coal-tar based sealants. They contain 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or PAHs, which studies suggest can be carcinogenic, toxic, and mutagenic. When rainwater and other precipitation hit your driveway, the toxic chemicals run off into your yard and into your local drinking water supply. In fact, this situation has been compared to dumping quarts of motor oil right down a storm drain.


Better alternative: Gravel and other porous materials are best for driveways, because they allow rainwater to sink into the ground, where it’s filtered and won’t inundate water treatment plants. But if you do seal blacktop, pick asphalt sealant and stay away from any product that has coal tar in its name (or products simply called “driveway sealant”). Lowe’s and Home Depot have already banned the bad stuff, but smaller hardware stores may still carry it.

Have The Healthiest Home On The Block

2. Synthetic pesticides: Chemical weed and bug killers both fit under this category and should be avoided both inside and outside of your house. (And dont' fall for the ones that pretend to be "natural.") Researchers link herbicides to various forms of cancer, including non-Hodgkin’s lymphoma; insecticides have been connected to brain damage in kids.

“This is a good time of the year to resolve not to use pesticides on lawns and gardens,” says Phil Landrigan, MD, an internationally recognized leader in public health, director of Mount Sinai's Children's Environmental Health Center, and Rodale.com advisor. “A few dandelions or buttercups or other little flowers in the middle of the lawn are not unsigh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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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alternative: Combating an indoor bug problem is as simple as cleaning up crumbs, sealing food in containers, and using wood shims and a caulking gun to fill pest entry points. If you’re spending big bucks on chemicals for a turflike lawn, reconsider. Pesticides and chemical fertilizers kill the health of the soil and create a lawn that allows for little rainwater absorption, which contributes to flooding. Try replacing some sod with plants native to your area; they don’t require as much water and maintenance.

If you’re dead-set on the idea of a perfect grassy lawn, get out there and weed by hand or with organic methods. The extra exercise will help you burn off your winter love handles. Check OrganicGardening.com for advice on chemical-free lawn care, and see our story on chemcial-free fixes for common lawn problems.

3. Antibacterial soap: The antimicrobial chemical triclosan in antibacterial soaps is believed to disrupt thyroid function and hormone levels in people; when it mixes into wastewater, it can cause sex changes in aquatic life. And health experts believe that overuse of this and other antibacterial chemicals is promoting the growth of bacteria that are resistant to antibacterial treatment.

Better alternative: Good old-fashioned soap and warm water will kill just as many germs, studies have shown. If you must use a hand sanitizer, pick one that’s alcohol-based and doesn’t list triclosan or other chemicals on its label.


4. Synthetic fragrances: Fragrance may be the most common type of chemical in your house. Used in laundry detergents, fabric softeners, dryer sheets, cleaning supplies and disinfectants, air fresheners, deodorizers, shampoos, hair sprays, gels, lotions, sunscreens, soaps, perfumes, powders, and scented candles, fragrances are a class of chemicals that may take you extra time and effort to avoid. But it’s worth it. The term “fragrance” or “parfum” on personal care product labels can be a cover for hundreds of harmful chemicals known to be carcinogens, endocrine disrupters, and reproductive toxicants, even at low levels.

Better alternative: Go the unscented route whenever possible, especially with soaps and detergents. Avoid any kind of air freshener or deodorizer, including sprays, gels, solid disks, and oils, suggests Anne Steinemann, PhD, University of Washington researcher who focuses on water quality and fragrances in consumer products. She’s also a Rodale.com advisor. “These products do not clean or disinfect the air, but they do add hazardous chemicals to the air we breath,” she says. “Instead of chemical air fresheners, freshen the air with better ventilation and by setting out some baking soda,” she suggests. You also can place a bowl of white vinegar in a room to dispel a funky smell.

Secret, Toxic Perfume Chemicals Linked to Cancer, Sperm Damage

5. Harsh cleaning products: Isn’t it ironic that we actually contaminate our air when we use harsh chemicals—some of which are carcinogens—to “clean” our homes? Ammonia can trigger asthmatic attacks, and harsh oven cleaners and drain openers can cause terrible damage to children who come into contact with them. “Every year we have these dreadful third-degree burns of the throat and esophagus because kids got into cleaners under the sink,” Landrigan says.

Better alternative: Take any cleaner whose ingredient list reads like a chemistry textbook to a hazardous waste disposal center in your municipality and replace the cleaners with ecofriendly ones that have simple, natural ingredients.

Better yet, save tons of money and pull out Grandma’s homemade cleaning concoctions, including:

• A general cleaning solution of one part white vinegar and nine parts water will kill 90 percent of bacteria and many spores, explains germ expert Donna Duberg, assistant professor of clinical laboratory science at Saint Louis University. Spray it on and let it dry to a nice shine on its own. The best surprise about distilled white vinegar? “Store brands work just as well as brand names,” says Duberg. “You can buy a gallon for $1.89 and make more than 10 gallons of cleaning solution. The only other thing you need is a spray bottle.” When you’re finished using a vinegar cleaning solution, dump it down your garbage disposal or toilet for bonus odor control.


• For a window glass cleaner, mix one part white vinegar with one part water and spray. Duberg says you even can use newspapers instead of paper towels to wipe the glass clean and save money.

• When cleaning in the kitchen after prepping meat, use hot, soapy water first (we like simple, unscented castile soaps) and then follow with the vinegar-water solution. For more great cleaning tips, check out green-living guru Annie Bond’s book, "Home Enlightenment: Create a Nurturing, Healthy, and Toxin-Free Home" (Rodale, 2008).


http://today.msnbc.msn.com/id/44258903/ns/health-health_care/#.TlqkaV3wkzk

Apple's CEO said I phone is made based on korean's product and technology

Apple's CEO tim cook said, smartphone is nothing special. there are a lot of IT products that disappeared without success and weren't be able to be globalized in Korea, smartphone is made by assembling those korean products and analizing on those.


My thought: Apple claims samsung copied their product, but actually it was apple
that copied korean's products. not only for the iphone, but also for the i-pod player, MP3 is invented by small korean company called i-river and that small sized korean company made far better quality mp3 player than ipod is, but Apple copied from i-river and made a i-pod player, which is a very cheap quality mp3 player that looks like it's made by chinese company and dominated mp3 player market with that cheap quality mp3 player called I-pod in the US successfully just because they have far better marketing knowledge of the US market than i-river as a american company. success in the US eventually lead to success in other countries in the world. my conclusion is apple is the copy cat of Korean company and do nothing more than selling korean technologies to the US which don't have that technologies, taking advantage of the fact they can conquer american market more comfortably because it's their country. so apple don't complain samsung copied the design of iphone, which is nothing more than square.

팀 쿡 애플 새 CEO "아이폰, 한국 기술과 제품이 토대가 됐다"

스티브 잡스에 이어 애플의 새 CEO로 내정된 팀 쿡이 우리나라 정보기술(IT) 분야 제품력과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26일 당 인터넷소통위원회가 주최한 ‘IT정책 수립을 위한 10대 이슈 토론회’에 참석해 지난 3월 실리콘밸리 애플 본사를 방문했을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팀 쿡과의 만났던 일화를 소개했다.

박 의장은 아이폰의 혁신적인 개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물었더니 “스마트폰 별거 아니다. 한국에서 사용되다 사라졌거나 세계화되지 못한 것들 많았는데 그걸 모아서 연구하고 다시 조립한 게 바로 스마트폰이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박 의장은 당시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로 있는 한미의원외교협의회 활동 차 실리콘밸리의 애플과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최고의 IT기업들을 잇따라 방문해 현황을 파악했다.

박 의장은 “실리콘밸리에서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다. 구글TV를 개발하는 한국인 연구원도 만났다. 다들 한국의 환경이 싫어서 미국으로 옮겼는데 행복해했다”면서 “지역구인 구로의 디지털밸리 젊은이들의 모습과 대비돼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고 창의력과 상상력,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정책을 만들어내겠다”면서 “10대 이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면밀히 검토해 IT산업에 역동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민주당의 공약으로 가다듬어 내놓겠다”고 말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m


http://www.etnews.com/news/detail.html?id=201108280037&portal=001_00001

허리도 무릎도 시원찮은데 무슨 운동할까

허리 쑤시면 등산 무릎 아프면 수영

현대인들은 운동 강박증을 갖고 산다.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상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은 물론 운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각은 운동에 머문다. 특히 나이가 들어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날도 선선해졌으니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라며 속을 태운다. 그러나 운동도 몸에 맞춰야 한다. 잘 하면 약이 되지만 못 하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걷기·등산, 척추 균형 잡아줘

허리통증 환자에게는 걷기나 등산 등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걷기는 뼈를 강화할 뿐 아니라 허리 유연성과 근육을 단련하는 데 좋은 운동이다. 몸 전체를 무리 없이 고루 움직이는 데다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하지의 혈액순환과 장운동을 촉진시키며, 척추의 균형을 잡아줘 특히 허리 디스크나 허리통증에 좋은 운동이다.

그러나 무릎이 좋지 않은 관절염 환자는 등산을 피해야 한다. 산은 정상에 가까울수록 기압과 기온이 낮아지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관절 통증이 훨씬 심해진다. 기압이 낮으면 관절 압력이 팽창하면서 통증 신경이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또 등산 자세도 관절염 환자에게는 좋지 않다. 건강한 사람과 달리 이미 관절이 손상됐다면 등산이 관절 통증과 부종을 더 심하게 하며, 이런 부담은 내리막길에서 훨씬 크다.

●디스크 환자는 수영 피해야

수영은 관절염 환자에게 가장 권장할 만한 운동이다. 물의 부력이 체중 부담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스크 등 척추질환자에게는 해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전문의들은 “특히 허리를 뒤로 젖히는 접영은 허리 부담이 크기 때문에 삼가는 게 좋다.”며 “척추전방분리증이나 척추후관절 병증이 있을 때는 절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쿠아로빅, 관절 치료에 효과

이런 환자라면 물 속에서 걷는 ‘아쿠아로빅’이 제격이다. 아쿠아로빅은 재활을 위해 고안된 운동으로, 특히 관절 치료에 효과적이다. 수영을 못 해도 상관없으며, 운동 강도를 높일수록 물의 저항이 커져 더 많은 열량을 소모하기 때문에 관절염은 물론 비만을 해결하는 다이어트운동으로도 제격이다.

여기에다 수압을 견디며 균형감각과 근력을 키울 수 있어 관절염 예방은 물론 심폐기능까지 강화할 수 있다. 또 물속에서 걷기·뛰기·틀기·차기 등 에어로빅 동작을 반복하면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되며, 부상 위험도 크지 않다.

●물 속에선 체중부담 크게 줄어

그렇다면 왜 물속 운동이 관절염 증상 개선에 좋을까. 바로 부력과 저항·온도·수압 때문이다. 관절염 환자는 무릎에 실리는 체중 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무릎의 부담이 클수록 연골이 빨리 닳아 관절염 통증이 심해진다. 그러나 물속에서는 부력으로 체중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보통 목이 잠기는 물속에서는 체중 부담이 90%, 가슴 높이는 75%, 허리 높이는 50%까지 감소된다. 따라서 물속에서는 관절염 환자들이 통증 때문에 못 했던 뛰기·점프 등의 운동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물은 저항력 때문에 운동 효과도 크다. 물 속에서는 저항 때문에 지상운동보다 에너지 사용량이 훨씬 많다. 1시간을 걸을 경우, 지상운동보다 칼로리 소모량이 2배나 많다. 그만큼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어서 체중으로 인한 무릎 부담을 줄여준다.

또 체온과 비슷한 30∼34도 정도의 따뜻한 물은 관절염 통증을 줄이고, 강직된 관절 근육을 풀어주며, 수압은 염증이 있는 관절의 부기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수중운동을 무리하게 하는 것은 금물. 특히 평형처럼 무릎을 많이 구부렸다 펴는 영법이나 발차기를 무리하게 할 경우, 관절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829025005

Saturday, August 27, 2011

How sex with Neanderthals made us stronger

Mating with Neanderthals and another group of extinct hominids, Denisovans, strengthened the human immune system and left behind evidence in the DNA of people today, according to new research.

The findings add to the growing body of evidence that modern humans who left Africa around 65,000 years ago mated with Neanderthals and Denisovans — two archaic species that lived in Europe and Asia.

The study, which appears in this week's Science, is among the first to show how the interbreeding shaped modern human genes and the attributes they pass to us.

Peter Parham, a professor of cell biology, microbiology and immunology at the Stanford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and his team focused their analysis on "HLA" genes, which are fast-evolving vital components of the human immune system.

"The modern human populations who left Africa to colonize other continents were likely to have been small groups who started off with limited HLA diversity and suffered further reduction of HLA diversity due to disease," Parham told Discovery News. "Interbreeding with archaic humans introduced additional HLA variants into the modern human population that increased their genetic viability and capacity to resist infection."

He and his colleagues studied the genomes for Neanderthals and Denisovans, as well as the DNA of modern human populations. The organization Bone Marrow Donors Worldwide, as well as bone marrow registries from several countries, provided data on HLA genes.

The analysis shows that Neanderthal and Denisovan HLA genes now represent more than half of such immune system-related DNA in modern European and Asian populations. They also appear to have been later introduced into Africans.


The specific gene HLA-A, for example, is present in the Neanderthal and Denisovan genomes. It contributed this much to the following modern human populations: Up to 95.3 percent for Papua New Guineans, 80.7 percent for Japanese people, 72.2 percent for Chinese people, 51.7 percent for Europeans, and 6.7 percent for Africans.

Such percentages provide clues on how modern humans migrated and interbred. The scientists believe some modern humans migrated out of Africa 67,500 years ago. Interbreeding became evident 50,000 years ago.

"Because archaic humans had lived in Asia and Europe for hundreds of thousands of years before the modern humans arrived, their HLA alleles almost certainly were adapted to the local infections and in this way further invigorated the immune systems of the recent modern migrants," Parham said.

Some of the Europeans and Asians then went back to Africa around 10,000 years ago, bringing the newly acquired genes and their associated immunity boost with them.


Human history was "a lot more complex and interesting" than previously thought, Svante Paabo, director of the Department of Genetics at the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told Discovery News.

In separate research, Paabo and his team found that about 4 percent of the genomes of non-Africans are derived from Neanderthals and 4 to 6 percent of modern Melanesian genomes are derived from Denisovans.

This earlier research and the new study then suggest at least two possible scenarios: Either interbreeding was frequent and widespread, involving a lot of individuals, or the majority of native modern populations from certain regions are descended from individuals that did interbreed, even if such "seed" groups were relatively small. Parham suspects the latter is what happened.

While Europe and Asia might now be viewed as a hotbed of interbreeding, modern humans who stayed in Africa appear to have been active interbreeders as well. Neanderthals and Denisovans weren't present, but other archaic human groups likely were.

"Well established is that modern Africans have greater genetic diversity, overall, than the modern populations of other continents," Parham said. "This greater diversity is likely due to what was inherited from earlier forms of Homo, combined with interbreeding between different forms of Homo."

The early ancestors of all modern people, then, did not seem to shy away from breeding with different human species, actions that strengthened our immune systems and likely resulted in other benefits yet to be revealed.


http://www.msnbc.msn.com/id/44277901/ns/technology_and_science-science/t/how-sex-neanderthals-made-us-stronger/#.TllMyV3wkzk

Neanderthal sex 'boosted health of human race' by improving our immune systems against disease

Scientists believe genes that help us fight viruses were inherited from Neanderthals

Virus-fighting genes inherited from different ancient human sub-species have had a positive effect on our fitness, according to U.S. researchers .

Cross- breeding between ancestors of modern humans and their extinct close relatives passed down specific genes which can still be found in our DNA.

Improvements in the Homo sapiens' immune system may also have been inherited from the Denisovans - a now-vanished human sub-species from eastern Asia.

Scientists discovered last year that ancient intimate relations meant as much as 4 per cent of the DNA of some people living today was Neanderthal.

A similar genetic study showed that up to six per cent of the modern human genome, or genetic code, was Denisovan in origin.

Lead researcher Professor Peter Parham, from Stanford University, California.said cross-breeding contributed to our gene pool.

He said: 'The cross-breeding wasn't just a random event that happened, it gave something useful to the gene pool of the modern human,'




Ancestors: Scientists discovered as much as 4 per cent of the DNA of some people living today is Neanderthal
Ancestors: Scientists discovered as much as 4 per cent of the DNA of some people living today is Neanderthal




Neanderthals, who lived in western Asia and Europe, co-existed with early modern humans for several thousand years before dying out around 30,000 years ago.

Homo sapiens, Neanderthals and Denisovans split into different populations from a common African ancestor around 400,000 years ago

The research, published today in the journal Science, focused on immune system elements called HLA genes.

They are critical to the body's ability to identify and destroy harmful foreign invaders and are among the most variable and adaptable of human genes.



DNA: Genes passed down from ancient human sub-species have improved our immune systems

DNA: Genes passed down from ancient human sub-species have improved our immune systems

Being flexible helps them stay ahead in the arms race with rapidly evolving viruses.

By comparing the HLA genes of modern and extinct humans, the scientists were able to show that certain HLA carried by people today were inherited from Neanderthals and Denisovans.

The ancient genes were analysed by looking at DNA extracted from fossil bones.

Within one class of HLA gene, the experts estimate that Europeans owe half their variants to interbreeding with Neanderthals and Denisovans, Asians 80 per cent, and people from Papua New Guinea up to 95 per cent.

The same pattern of inheritance was not seen in other regions of the human genome.

Researcher Dr Laurent Abi-Rached said: 'The HLA system is unique in its diversity and the strength of natural selection acting on it.

'But it's possible that other gene systems, particularly the ones under similar pressure for variation, could show a similar pattern.'


http://www.dailymail.co.uk/sciencetech/article-2030140/Neanderthal-sex-boosted-health-human-race-improving-immune-systems-disease.html

Friday, August 26, 2011

잡스와 리눅스, 누가 더 세상을 바꿨을까

8월25일 스티브 잡스는 “더 이상 최고경영자 자리를 수행하지 못하는 날이 왔다”며 공식적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애플은 그의 의사를 수용했으며, 팀 쿡 최고경영자가 잡스의 뒤를 이었다. 국내외 주요 언론들은 “애플에서 잡스는 정말 놀라운 일을 보여줬다. 그의 경영능력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전하며 잡스의 사임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공식 사임한 날은 공교롭게도 리눅스 커널이 탄생한지 20년 되는 날이기도 했다. 1991년 8월25일 핀란드 헬싱키대학의 평범한 대학원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가 처음으로 실험용 리눅스 커널을 발표하고 소스코드 공개한지 20년이 된 것. 이후 리눅스는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이며, 개발자들이 사랑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됐다.

이렇게 중요한 날을 그냥 넘기는 게 아쉬웠던 탓일까. 미국의 유명 테크놀로지 블로그인 리드라이트웹은 “잡스의 사임과 리눅스 탄생 20주년을 비교를 통해 무엇이 더 컴퓨터를 변화시켰고, 세상을 변화시켰는지 비교해봤다”며 리눅스와 잡스의 영향력을 비교해 설명했다.

이어 리드라이트웹은 “비록 잡스 한 사람과 리눅스 개발자 군대를 비교하는 것은 부당한 일인 것은 알지만, 오히려 둘 사이의 극명한 차이 때문에 더 재미있는 비교가 될 것”이라며 “잡스는 제품 개발에 있어 세심한 부분까지 살펴보고 꼼꼼하게 개발한 반면 리눅스 커뮤니티는 서로 협력하지만 통제당하지 않는 등 이런 점이 둘을 비교하는데 있어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먼저 스티브 잡스의 경우다.

리드라이트웹은 “애플1에서부터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애플은 그래픽사용자환경(GUI)를 대중화 하는 등 컴퓨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며 “심지어 지금과 달리 애플이 판매 시장을 주도하지 않았을 때도, 운영체제 등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잡스가 스티브 위즈니악, 마이크 마쿠라 등 공동창업자와 애플이란 회사를 설립한 때는 1975년. 초창기 애플은 애플2 시리즈 등 개인용 컴퓨터를 공급했다. 이후 잡스는 마우스를 이용한 GUI 환경을 매킨토시에 도입해 업계에서 주목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화려한 날이 오래간 것은 아니다. 애플3의 냉각팬 과열 문제로 인해 수천 대의 컴퓨터 리콜 사태가 벌어졌고, 애플 사라의 판매 부진 등으로 잡스는 이사회와 갈등을 겪었고 결국 쫓겨나게 됐다. 이후 잡스는 동료 6명과 함께 퇴사 후 컴퓨터 플랫폼 개발회사인 ‘넥스트(NeXT)’를 세워 ‘넥스트텝’이라는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이후 컴퓨터그래픽회사인 픽사를 인수하고, 이후 토이스토리로 성공을 거두면서 가장 유명한 제작자이자 개발자가 됐다.

그리고 이때 기회가 찾아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95를 출시하면서 PC시장 선점에 나서자 위기에 몰린 애플이 잡스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고 요청한 것. 애플은 넥스트텝이 윈도우95와 경쟁할 만 하다고 본 것이다.

잡스의 귀환은 화려했다. 리드라이트웹은 “넥스트와 애플의 합병 이후 잡스가 애플의 최고 경영자로 복귀하게 됐는데, 이후 애플은 한해 4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기록하는 회사로 거듭나게 됐다”며 “그 전까지만 해도 애플은 10억 달러의 적자를 낸 기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애플에서 잡스가 보인 능력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1998년 본체와 모니터가 일체된 아이맥 출시로 애플을 기사회생 시키기 시작했으며, 2001년 아이팟과 아이튠즈라는 뮤직 스토어를 출시해 소위 ‘애플빠’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잡스의 능력은 극에 달했다.

리드라이트웹은 아이폰 출시를 두고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개인 컴퓨터 시장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리드라이트웹은 “앱스토어 환경을 만들어서 개발자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혁신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애플의 아이폰을 통한 혁신은 아이패드로 이어졌다. 리드라이트웹은 “잡스의 경력은 혁신을 전제로 이뤄지고 있다”며 “만약 잡스가 애플로 복귀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블랙베리 같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을지 모르며, 태블릿 컴퓨터는 아직 등장도 안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잡스만 이렇게 놀라운 혁신을 보인 것은 아니다. 리눅스도 잡스 못지않게 컴퓨터 환경에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리눅스의 경우, 작은 임베디드 디바이스에서부터 세계 슈퍼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리눅스는 애플처럼 화려하게 조명을 받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혁신을 주도했다고 리드라이트웹은 설명했다.

사실 오늘날 리눅스를 사용하지 않는 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웹 사이트와 웹 기업의 급속한 발달은 주로 리눅스 때문에 가능해졌다. 비싼 유닉스를 대신해 토발즈가 리눅스 커널을 무료로 공개하면서 개발자들은 새로운 웹 환경을 계속해서 만들고 수정해 나갈 수 있게 됐다.

리드라이트웹은 “리눅스가 이런 자유 소프트웨어 성격을 띄었기 때문에 오늘날 IT 기업의 많은 발전을 이끌어냈다”며 “페이스북이나 구글, 트위터 등 유명 기업들도 리눅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마존이나 이베이 경매 입찰을 통해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도 리눅스를 사용해야 한다. 구글 애플리케이션 엔진에도 리눅스가 사용되고 있으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의 모바일 기기와 인터넷TV, 킨들 같은 전자책 리더에도 리눅스가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리눅스의 영향력은 점점 더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리드라이트웹은 “리눅스가 대량의 오픈소스들과 협력을 통해 그 세력을 키우고 있는중”이라며 “리눅스는 개발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누구나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잡스와 리눅스가 보여준 혁신은 오늘날 컴퓨터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둘 중에 누가 더 많은 기여를 했냐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만큼 이들이 IT 발전에 시사한 바가 높다.

이제 잡스는 사임했고, 리눅스는 탄생 3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과거를 통해 이들이 보여준 혁신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을 뛰어넘는 개발자와 커뮤니티의 탄생을 지켜볼 때가 아닌가 싶다.




http://www.bloter.net/archives/73257

살빼는데는 에어로빅이 가장 효과적이다.

 뱃살 빼고 싶으면 `이것` 당장 시작해라!

뱃살 빼는 데는 에어로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듀크 대학교 연구팀이 최근 에어로빅과 근육운동 중 뱃살 빼는데 더 효과적인 운동법이 무엇인지 연구한 결과 유산소운동의 일종인 에어로빅이 근육운동보다 뱃살을 줄이는 데는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18~70세 196명의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8개월 동안 진행됐다. 연구팀은 이들을 모두 세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에어로빅, 한 그룹에는 웨이트트레이닝, 나머지 한 그룹에는 두 운동을 병행해서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웨이트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한 그룹은 8개월이 지난 뒤 복부지방, 내장지방, 지방간 수치 모두에서 특별한 변화를 보이지 않은 반면, 에어로빅 그룹은 내장지방, 지방간, 피하지방 등 모든 복부지방 수치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또 두 운동을 병행한 그룹보다도 뱃살 감소 정도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에어로빅과 근육운동 직후 소모되는 칼로리에서 차이가 생겨 이 같은 결과가 생겼다"며 "근육운동을 하면 근육량이 늘어나고 근육의 강도가 강해지지만, 단순히 뱃살을 빼기 위해서라면 에어로빅을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팀에 따르면 에어로빅 그룹 실험 참가자들은 근육운동 그룹 참가자에 비해 67% 가장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는 미국 생리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Physiology)에 소개됐다.

소식을 들은 누리꾼들은 "역시 유산소운동" "체중 감소는 에어로빅으로, 유지는 근육운동이 맞죠" "에어로빅 롸잇나우" "우리 엄마는 13년째 에어로빅하는데 왜 안 빠지는 거야?" "유익한 정보 감사"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H34&newsid=01617046596351256&DCD=A00710&OutLnkChk=Y

잠 깬 직후 흡연하면 폐암 위험↑


아침에 잠이 깬 직후 담배를 피우면 폐암과 두경부암 위험이 더 커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의과대학의 조슈아 머스캐트(Joshua Muscat) 박사는 아침에 잠이 깬 후 60분 이내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다른 흡연자들에 비해 폐암과 두경부암에 걸릴 위험이 30-80% 높다고 밝힌 것으로 미국의 과학뉴스 포털 피조그 닷컴(Physorg.com)이 25일 보도했다.

머스캐트 박사는 평소 담배를 피웠던 폐암환자 4천775명과 폐암에 걸리지 않은 흡연자 2천835명을 대상으로 매일 첫 담배를 피운 시간과 폐암 발생률을 분석한 결과 아침잠이 깬 후 31-60분 사이에 담배를 피운 사람은 다른 흡연자에 비해 폐암 발생률이 평균 31%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잠이 깬 후 30분 안에 첫 담배를 피운 사람은 폐암 발생률이 79%나 높았다.

한편 흡연 전력이 있는 두경부암 환자 1천55명과 다른 흡연자 795명에 대한 분석에서는 아침에 잠이 깬 후 31-60분 안에 첫 담배를 피운 사람은 두경부암 발생률이 42%, 30분 안에 피운 사람은 59% 각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직후 담배를 피우면 폐암과 두경부암에 걸릴 위험이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폐암과 두경부암은 모두 흡연이 위험요인이다.

그 이유는 잠이 깬 직후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을 포함한 독성물질을 많이 흡입하게 되고, 이런 사람은 다른 흡연자들에 비해 니코틴 중독이 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고 머스캐트 박사는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암학회(American Cancer Society)가 발행하는 학술지 ‘암(Cancer)’ 온라인판에 실렸다.

/연합뉴스


http://www.fnnews.com/view_news/2011/08/26/11082609374581.html

Thursday, August 25, 2011

이론으로만 존재한 별 빨아들이는 거대 블랙홀 첫 관측



태양보다 약 1000만배 무거운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빨아들이는 모습이 국내외 공동 연구진에 의해 처음 포착됐다.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예측된 현상을 직접 관측하는 데 성공해 거대 블랙홀 존재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한국 미국 이탈리아 영국 일본 대만 등 6개국 58명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은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삼키면서 갑자기 밝아지는 순간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24일 밝혔다. 한국에선 서울대 임명신 교수가 이끄는 초기우주천체연구단 5명, 천문연구원 전영범·성현일 박사가 참여했으며 경북 영천 보현산천문대의 1.8m 반사망원경 등 국내 관측장비가 크게 기여했다. 연구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25일자 온라인판에 발표됐다.

블 랙홀은 중력이 매우 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천체다. 질량이 매우 큰 행성이 중력을 이기지 못해 붕괴되면서 만들어진다. 거대질량 블랙홀은 태양보다 100만∼10억배 더 무거운데 대부분 은하 중심부에 위치한다. 천문학자들은 별이 거대 블랙홀에 가까이 가면 강한 중력 때문에 산산조각 나 잔해가 빨려 들어가는 과정에서 밝은 빛을 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3월 28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스위프트(Swift) 위성은 X선 관측을 통해 39억광년 떨어진 은하의 중심부가 갑자기 밝아지는 현상을 발견해 이 천체를 ‘Swift J1644+57’로 이름 지었다. 국제공동연구팀이 이 천체의 밝기와 모양 변화를 분석, 이 현상이 거대블랙홀의 중력 때문에 부스러진 별의 잔해가 블랙홀로 떨어질 때 강한 광선다발(고온 플라즈마 입자의 분출)이 특정 방향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임을 밝혀냈다.

민태원 기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ci&arcid=0005286232&code=11161600&cp=nv1

나이 들수록 소금 줄여야 치매 막는다

소금의 과다 섭취가 고혈압이나 뇌졸중 등의 위험성만 증가시키는 게 아니라 노인성 치매에 걸릴 개연성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 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25일 하루에 소금을 한 티수푼 이상 초과해 섭취하면 두뇌활동이 무디게 돼 결국에는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보도했다. 이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 연구진이 지난 3년간 67세와 84세 사이의 건강한1262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소금 소비량과 신체활동의 연관성을 추적한 결과다.

연구를 주도한 엘렉산드라 피오코 박사는 소금 과용과 운동부족이 결합되면 노인들의 인지 능력이 더욱 현저히 손상된다고 주장했다. 소금 과용이 심장 건강에 미치는 것 이상으로 노년층의 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전제로, 하루에 한 찻숟가락(7.7g) 이상의 소금을 섭취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는 맥도널드의 빅맥 3개 반이나 감자칩 같은 크립스 15봉지에 함유된 소금 분량이상을 넘어서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825601016

Judging penis size by comparing index, ring fingers

July 04, 2011|By Thomas H. Maugh II, Los Angeles Times

A shorter index finger may be an indicator of larger penis size.


Penis length cannot be determined by how big his hands or feet are -- those and other supposed indicators have been widely discredited for years. But now a team of Korean researchers has produced what may be a more reliable guide: the ratio of the length of his index finger to that of his ring finger. The lower that ratio, the longer the penis may be, the researchers wrote Monday in the Asian Journal of Andrology.


Dr. Tae Beom Kim, a urologist at Gachon University in Incheon, Korea, and his colleagues studied 144 men over the age of 20 who were undergoing urological surgery for conditions that do not affect the length of the penis. One member of the team carefully measured the lengths of the index and ring fingers on the subject's right hand before surgery -- left hands are thought to be more variable. A second team member then measured penis length immediately after the subject had been anesthetized. The length was measured both when the penis was flaccid and when it had been stretched as much as possible. Stretched length is thought to correlate to erect length, the team wrote. The team found that, in general, the lower the ratio of the lengths of the two fingers, the longer the stretched length of the penis.

Although it may seem like the results are coming out of left field, they actually are not. A variety of studies suggest that the ratio of the two finger lengths is determined by prenatal exposure to sex hormones, both testosterone and estrogen. It is not unreasonable to assume that penis length might also be.

Men and women are what is termed sexually dysmorphic in terms of finger lengths. In women, the index and ring fingers are generally the same length, while in men the index finger is generally shorter. Researchers from UC Berkeley created a stir in 2000 when they reported that lesbian women tended to have a ratio of the two finger lengths that was more typical of men. But the situation was more complicated for men. The team found no difference in the ratio between gay and straight men unless they had several older brothers -- a factor which had previously been linked to being homosexual. Such men were found to have an unusually low ratio of the finger lengths.

Other recent research has suggested that men with a lower ratio have a more symmetrical face and are more attractive to women, a phenomenon known as the "sexy ratio." And just last year, researchers from Warwick University and the Institute of Cancer Research in Britain reported that a man's risk of developing prostate cancer is related to the ratio of the two digits. Men whose index finger in longer than their ring finger were found to be one-third less likely to develop prostate cancer.

Digit ratios are noninvasive and easy to measure and thus may provide a surrogate for studying prenatal development in men, wrote Dr. Denise Brooks McQuade of Skidmore College in Saratoga Springs, N.Y. in an editorial accompanying the study.


http://articles.latimes.com/2011/jul/04/news/la-heb-finger-ratio-penis-length-20110704

Monday, August 22, 2011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생물 TOP10

매년 300만명 죽이는 생물, 모기 1위 올라

거대한 몸집에 날카로운 이빨, 보기만 해도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물들. 하지만 작은 몸집으로도 그들 못지 않게 무서운 공격을 하는 동물들도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최근 한 해외 사이트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생물 TOP10을 소개했다. 물론 사자, 악어 등 그 명성이 익히 알려진 동물들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런데 1위가 조금 의외다. 모기다. 그들이 무서운 이유를 알아본다. [자료=msnbc]


1위 모기(mosquito)

세 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생물로 불린다. 작고 가벼운 곤충이지만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주범이다. 모기는 말라리아(학질 또는 학이라 불리는 전염성 질환), 뎅기열(고열을 동반하는 급성 열성 질환),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심한 두통을 일으키는 의식장애)와 같은 질병을 전염시킨다. 이로 인해 매년 30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동물의 제왕' 사자를 물리치고 가장 무서운 생물 1위에 오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2위 코브라 (Asian Cobra)

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독을 내뿜는 것으로 유명한 코브라. 연간 5만 명 이상이 이 코브라의 독성에 의해 숨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는지. 코브라의 독에 노출될 경우 코끼리가 3시간 안에 목숨을 잃을 뿐더러 성인의 경우 15분 만에 사망할 수 있다.


3위 박스 해파리 (Box jellyfish)

둥 그런 공 모양의 박스 해파리는 24개의 눈과 60여 개의 촉수를 가지고 있다. 각 촉수는 5000개의 연속된 독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성인 남자 수십 명을 가뿐히 죽일 정도라고 한다. 이 독성에 노출될 경우 심장 마비, 신경계 마비, 피부병 등의 증상이 온다. 일반 해안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이 해파리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며 일부는 이로 인해 사망하기도 한다.


4위 백상어 (Great White Shark)

1975 년 개봉한 영화 '죠스'를 보셨다면 누구나 아는 바다 속 무법자 상어. 입 안 가득 면도날과 같은 날카로운 이빨 3000여 개를 지닌 상어는 물었다 하면 톱날처럼 모든 것을 잘라낸다. 물 속 엄청난 거리에서도 피 냄새만 맡았다 하면 순식간에 찾아온다고 한다. 상어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당할 가능성은 복권 당첨 확률처럼 매우 낮지만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5위 사자 (African Lion)

큰 송곳니, 날카로운 발톱, 재빠른 움직임. 사냥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고양이과로 동물의 제왕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초원의 사냥꾼이다. 닥치는대로 먹어 치우는 무시무시한 식성 덕분에 사자만 나타나면 사람이고 동물이고 모두 긴장하며 도망치는 것이 순리라고 한다. 1898년엔 사자 한 쌍이 케냐에서 철도 작업을 하던 135명의 인간을 해치우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6위 악어 (Australian Swater Crocodile)

악 어는 크로커다일과 엘리게이터, 두 종류로 나뉜다. 그 중 크로커다일 종은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입구조를 갖고 있다. 이빨이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북쪽과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습지에 살고 있는 악어는 2200파운드 (약 1t)의 무게로 세계 최대 파충류다. 주로 생선과 같은 작은 먹이로 식사를 해결하지만 인간을 공격하기도 한다. 물 속에 빠진 사람뿐만 아니라 물가에 서 있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특유의 입구조를 이용해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 질식시킨 다음 계속 공격한다고.


7위 코끼리 (Elephant)

온 순해 보이는 코끼리가 무서운 동물 리스트에 오르다니 조금은 의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는 아니다. 온순한 코끼리는 한번 화가 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한다. 화난 코끼리에게 다가가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할 정도다. 오래 전 인도에서는 코끼리를 길들여 전쟁터에 내보내기도 했다. 엄청난 몸집에 몸무게는 5~7t에 달하니 조금만 치여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해마다 500여 명의 사람이 코끼리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8위 북극곰 (Polar Bear)

역 시 의외의 동물이다. 귀여운 이미지로 각종 광고 모델로도 등장하는 북극곰은 사실 아주 위험한 동물 중 하나다. 1500파운드(약 680㎏)의 몸집에 2인치 길이의 발톱을 지니고 있는데 이 발톱은 아주 날카로워 한번 할퀴면 끔직한 사태가 일어난다. 바다 표범, 바다 코끼리 등 자신의 몸집과 비슷한 동물들도 거뜬하게 해치운다. 다행히 사람이 살기 힘든 극지방에 서식하기 때문에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9위 아프리카 물소 (Cape Buffalo)

둔 탁하면서도 날카로운 2개의 뿔을 지니고 있는 물소는 몸집이 1500파운드(약 680㎏)에 달한다. 하지만 이 물소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물소는 주로 수백마리가 떼로 움직이기 때문에 운 좋게 물소 한 마리를 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뒤이어 달려오는 수백 마리의 물소의 공격은 피하기 힘들다고 한다.


10위 독 화살 개구리 (Poison Dart Frog)

중 남미에 서식하는 독 화살 개구리는 크기는 작지만 아주 강력한 독을 지니고 있다. 피부에서 독을 분비해 주변의 생물을 잡아 먹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독성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인데,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전쟁을 할 때 개구리의 독을 화살에 발라서 전쟁에 사용했다고 한다. 가장 강한 독성을 가진 개구리의 경우 건장한 성인 남자가 개구리의 피부를 만지기만 해도 사망할 수도 있다.


유혜은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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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8/23/5678157.html?cloc=nnc

Sale: $ 99,-for a TouchPad with webOS HP

Posted on August 22, 2011 |


And the next slap in the face for all early HP TouchPad, now HP in United States begins with the field discharge and sold the webOS tablet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for just $. 99,- This applies to the version with 16 GB, which would have 32 GB of memory, must be put on the table, 150-dollar. The Sell-off is to start today, there is no information about a possible sell-off in Europe yet, it can be assumed but firmly.


Who buys now a TouchPad? For 80-100 euros would consider that myself. This is really annoying, but for owners of a TouchPad, after everything they have relied on HP and its investment in webOS, a high price paid and were therefore bitterly disappointed. Now they even sell the possibility the tablet with low loss, because HP new devices for only 99,-dollar copies sold. And the straight times 2 days after the announcement.


HP makes with its current strategy does not have any friends and harms the image of his mark, times, except for financial losses, which currently is a fiasco for the company from the United States. Pre 3 would have canceled by way and not just more arrives in shops, as it seems with zukünftien updates for webOS remains to be seen.




스트레스 그림? 빨리 움직이면 “스트레스 많이 쌓였네요”




일명 스트레스 그림이라는 이미지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으로 퍼지고 있는 스트레스 그림은 착시로 인해 기괴한 움직임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이미지를 '스트레스 그림'으로 규정한 네티즌들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정도에 따라 이 그림 움직임이 달라보인다.

즉 원래 정지돼있는 그림이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그 움직임이 더 빠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스트레스 그림을 주장하는 네티즌들은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기 때문에 이 그림을 봐도 정지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 일부에서는 "단순한 착시를 이용한 일종의 매직아이 비슷한 것 아니냐"면서도 "그림이 움직이니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멀미 나려고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http://news.donga.com/Economy/New/3/01/20110822/39721363/1


내 혈액으로 어깨근육 파열 치료

40~50대가 넘어가면 오십견 등으로 어깨 수술 받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자신의 혈액을 이용하면 재파열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구수본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중장년층에게 흔히 찾아오는 어깨 통증.

보통 오십견이라고 알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깨 근육에 있는 힘줄이 닳거나 찢어지는 회전근개 파열이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인터뷰:권정자, 회전근개 파열 수술환자]
"밤만 되면 더 아파요. 낮에는 움직일 때 좀 아팠는데, 밤 되니까 막 어깨가 쑤시고 아파요, 밤마다."

보통은 내시경을 이용해 수술하는데, 재파열되는 것을 막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혈소판 풍부 혈장, PRP를 이용하면 재파열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눠 수술한 결과를 비교해봤더니 혈소판 풍부 혈장, PRP를 이용한 수술환자의 재파열률이 15% 정도 낮았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내 몸을 치료하는 데 내 혈액을 사용하는 겁니다.

약 한 시간 반에 걸쳐 몸에서 빼낸 혈장을 이렇게 농축시킨 뒤 치료에 이용하게 됩니다.

[인터뷰:조현철, 서울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
"혈소판을 농축시킴으로서 조직 치유에 관계되는 30여 가지 성장인자를 농축시켜서 조직 치유를 더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전근개 파열 수술에 혈소판 풍부 혈장을 이용한 연구 결과는 이번이 국내 최초로, 더 많은 임상연구를 통해 통계적 유의성이 추가 확보되면 다른 근골격계 질환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YTN 구수본[soobon@ytn.co.kr]입니다.



http://www.ytn.co.kr/_ln/0105_201108221244225633

귀에 물 들어가도 면봉 쓰지 마세요

귀이개 써도 세균감염 우려
선풍기-드라이기 써야 안전


휴가철 신나게 물놀이를 한 뒤 생기는 질병 가운데 눈병 못지않게 흔한 게 있다. 바로 외이도염이다.

최근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6∼2010년 외이도염 진료 환자수를 분석한 결과 월평균 진료인원은 16만313명이었다. 이에 비해 8월 평균은 26만3850명으로, 평균치보다 10만 명 이상 많았다. 성별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고르게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이도염의 대표적인 증상은 귀의 통증. 귀에서 진물이 나오기도 한다. 심하면 외이도가 막혀 청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외이도는 길이 2.5cm, 지름 0.6cm, 용적 1mL 정도의 짧고 좁은 S자형의 관으로, 귀의 입구에서 고막에 이르는 통로다.분당서울대병원 제공



구자원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외이도염은 귓구멍과 바깥귀가 세균에 감염돼 생기는 질병”이라며 “여름철 습한 날씨와 물놀이로 바깥귀가 축축해지면 쉽게 상처가 나는데, 이 때문에 외이도염 환자가 8월에 급증한다”고 말했다.

물놀이를 한 뒤 △귀를 말리기 위해 면봉을 사용하거나 △귀지를 파내기 위해 귀이개를 사용하거나 △이어폰을 무턱대고 사용하면 바깥귀에 상처를 줘 세균에 감염되기가 더 쉬워진다.

일단 외이도염이 발생하면 병원을 찾아 진물로 지저분해진 바깥귀를 깨끗하게 해 줘야 한다. 그러고는 항생제를 적절히 사용해 세균 감염을 막아야 된다. 짧게는 3, 4일이면 치료되지만 길게는 2,3주까지 길어지기도 한다.
박민현 서울시립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또 “바깥귀에 물이 들어가면 무리해서 귓속 깊은 곳까지 파려 하지 말고 귓구멍 근처의 물만 닦아내고 털어낸 뒤 선풍기나 헤어 드라이기의 약한 바람으로 말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http://news.donga.com/It/New/3/08/20110822/39699822/1

오메가-3 지방산, 암도 치료한다!

심혈관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오메가-3 지방산이 항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새롭게 규명됐습니다.

건강식으로 알려진 오메가-3 지방산, DHA의 효용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정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진 오메가-3 지방산.

오메가-6 지방산과 함께 우리 몸에서 합성할 수 없어 고등어와 참치 등 등 푸른 생선과 들기름 등 음식물로 섭취가 가능한 필수 지방산입니다.

이처럼 우리 몸에 필요한 오메가-3 지방산 DHA가 자가포식을 유도해 각종 암세포를 제거한다는 사실을 충남대학교 임규 교수팀이 새롭게 규명했습니다.

[인터뷰:임 규, 충남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메가-3 지방산을 처리하게 되면 암이 자연사멸해서 죽는다 그런 보고들만 돼 있는데 저희는 이번에는 그 이외에도 자가포식이라는 새로운 기전에 의해서 암을 죽이면서..."

오메가-3 지방산이 자연사멸 이외에도 자궁경부암과 폐암, 유방암 세포 등에서 자가포식을 유도해 궁극적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것을 촉진시킨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지난 4년간 오메가-3 지방산이 각종 암세포에서 항암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시험관과 동물실험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암세포에 DHA를 처리하면 우리 몸을 방어하는 단백질인 p53의 양이 줄고, 대사효소인 AMPK를 활성화시켜 암세포의 자가포식을 유도해 자연사멸과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게 됩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포생물학 분야 국제 권위지인 '자가포식(Autophagy)'지 온라인판으로 실려 과학성을 입증받았습니다.

[인터뷰:임 규, 충남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메가-3 지방산이 임상결과가 상당히 많다면 실제적으로 암을 치료, 예방 목적으로 처방도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메가-3 지방산을 비타민처럼 지속적으로 복용할 경우 심혈관 질환뿐만 아니라 각종 암 예방과 치료에 활용돼 국민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YTN 이정우[ljwwow@ytn.co.kr]입니다.


http://www.ytn.co.kr/_ln/0105_201108221820014353

높은 베개·무거운 목걸이…작은 버릇이 목건강 망친다

[한겨레] 목 디스크 예방하려면


수술 쉽지 않고 재발 많아


바른 생활습관이 최선책


컴퓨터 작업 많은 직장인


머리·목 내미는 자세 피해야

수술도 쉽지 않고, 재발도 많다는 목 디스크는 전체 디스크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환자가 많다. 10여년 전에 견줘 10배나 늘었다. 진단기술의 향상도 한몫했지만,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사용 증가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생활 속 작은 습관들도 목 건강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름철에 무심코 하는 작은 행동들은 특히 목 건강을 해친다. 높은 목침을 베고 자는 일, 두껍고 무거운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것, 멋을 내려고 목을 감싸 쥐는 홀터넥 원피스나 수영복을 입는 것도 목에 무리를 준다. 무거운 물건을 져 나르거나 책상 앞에서 오래 컴퓨터 작업을 하는 것도 목 건강에 좋지 않다.

■ 6~8㎝ 베개의 수면과학

목 디스크는 목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가 밀려나와 신경을 눌러 생기는 척추질환이다. 증상만 갖고도 쉽게 진단이 가능하다. 통증이 오기 때문이다. 흔히 목의 통증만을 생각하지만, 어깨와 팔, 손끝으로 내려가는 통증이 특징이다. 목을 뒤로 젖히거나 굽히면 통증이 더 심해진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팔·손가락의 감각과 근력을 검사하는 신경학적 검사와 엑스레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으로 척추모양을 관찰한 뒤 디스크 간격과 신경관 협착 등을 보는 것이 좋다.

목 디스크는 자세가 불안정할 때 생기는 수가 많지만, 여름철에 흔히 쓰는 목침 등 높은 베개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연구 결과, 전문가들이 찾아낸 가장 이상적인 베개 높이는 6~8㎝다. 누워서 몸이 수평을 이룰 수 있는 자세가 되도록 조정해야 한다. 베개 커버는 면이 좋고, 속은 곡식류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흡입성이나 유연성이 뛰어난 것이 좋다. 엎드린 자세는 척추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바로 누울 때는 목뼈와 등뼈가 일직선상에 있도록 높이를 맞춘다. 옆으로 누울 때는 바로 누울 때보다 조금 더 베개를 높이는 것이 근육이완이나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

■ 구두 잘못 신어도 목뼈 삐끗

몸에 하중이 가는 것도 목뼈나 관절에 큰 무리를 준다. 바른 자세를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외로 원인은 발에 있을 수 있다. 평발이거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장시간 신어서 자세가 불안정할 때도 목에 통증이 올 수 있다. 무거운 것을 어깨에 많이 지고 날라야 하는 건설 노동자, 노트북 등 무거운 가방을 오래 들고 다니는 세일즈맨, 목을 숙이고 손을 많이 쓰는 사람들도 목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를 숙이고 손을 많이 써야 하는 서류 작업이나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직장인들도 주의해야 한다. 머리와 목을 앞으로 내미는 자세는 특히 목 디스크의 원인이다. 일단 목이 아프면 자세교정과 휴식, 통증유발점 주사 등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증상이 계속되면 목 디스크로 넘어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 목의 올바른 자세가 가장 중요

목 디스크 수술은 경동맥, 식도, 기관지, 성대 신경 등을 건드릴 수 있어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그러나 최근엔 단점을 보완한 경추 인공디스크 치환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가 된 디스크를 제거하고 뼈를 고정시키는 대신, 움직이는 기능을 가진 인공디스크로 수술 부위 움직임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술 또한 여전히 극도의 전문성과 정밀성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 결정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수술을 떠올리기 전에 가장 먼저 올바른 자세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컴퓨터 모니터는 눈높이나 눈높이보다 약간 낮게 고정하고 자세를 바꿔가면서 한시간마다 10분 정도씩 휴식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운전을 할 때도 좌석 뒤 머리받침을 반드시 부착하고 목이나 상체를 앞으로 빼는 습관은 줄이도록 한다. 텔레비전을 볼 때 소파에 눕거나 벽에 머리를 기대는 것,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보는 것도 목뼈에 무리를 준다.

목 디스크를 예방하려면 스트레칭과 체조가 좋다. △목을 좌우로 기울여 늘려주기 △좌우 어깨쪽을 바라보면서 목 돌리기 △턱을 앞쪽으로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목 빼기 등을 수시로 해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도움말: 한림대 성심병원 척추센터 김석우 교수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66&newsid=20110822201018140&p=hani

Sunday, August 21, 2011

프랑스혈통은 라틴계가 많고 그리고 프랑크족인데

이 름 elijo

제 목 이 것을 부정할 자 있는가?



고구려인의 대다수는 발해인이 되었고

발해인의 대다수는 금나라사람이 되었고

금나라의 뒤를 이어 청나라가 세워졌다

고로 고구려의 후계자는 만주족이며

고구려는 만주족의 역사다


ㅋㅋㅋ123
ㄴㄴ 일단 동이족이고 발해사람도 고려에 편입됨.|123.199.***.***
2011.08.21 08:52
오오미. [songny**(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니논리라면 로마를 멸망시킨건 게르만 게르만이 유럽을 지배했으니 유럽전채역사는 게르만의 역사 [기생령보러가자]
2011.08.21 08:56
tio
게르만족이 이탈리아 반도 인구의 대다수를 점한 게 아니잖아|118.223.***.***
2011.08.21 09:01
tio
지금 게르만족이 다수인 나라는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영국 정도인데 무슨 전유럽을 지배해|118.223.***.***
2011.08.21 09:04
tio
동부는 거의 슬라브권이고 남부는 라틴인데.|118.223.***.***
2011.08.21 09:04
뻐킹삼수벌레 [tmsnfkdlvm**(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이런 좆도 모르는 새끼들은 그리스가 라틴인이라고 하겠짘ㅋㅋ
2011.08.21 09:05
뻐킹삼수벌레 [tmsnfkdlvm**(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글쓴이 말고 tio
2011.08.21 09:06
tio
고구려의 후계자는 만주족이다|118.223.***.***
2011.08.21 09:07
뻐킹삼수벌레 [tmsnfkdlvm**(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실제로 로마가 망하고 이탈리아 땅에는 동고트 왕국과 롬바르드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호갱님 롬바르드야 비잔티움 제귝 때문에 전부 지배를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동고트 왕국은 이탈리아 전역 지배 맞습니다
2011.08.21 09:09
tio
게르만족이 로마사람 다 죽이고 게르만족으로 채웠냐? 그럼 이탈리아도 지금 게르만어 써야지. 그럼 무굴제국 이후의 인도는 몽골역사냐?|118.223.***.***
2011.08.21 09:11
댓글돌이
댓글 10개 돌파!!

뻐킹삼수벌레 [tmsnfkdlvm**(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그럼 영국땅에서 켈트인이 전부 몰살당했나요? Dna분석 결과나 보고 옵니다
2011.08.21 09:12
tio
그 나라 인구의 다수가 어느혈통인가를 따져야지. 소수 이민족이 지배하면 그 나라 사람 혈통이 싹 바뀌냐?|118.223.***.***
2011.08.21 09:13
tio
영국은 앵글로색슨이 켈트를 몰아냈으니 지금도 스코티쉬들이 잉글리쉬를 싫어하지|118.223.***.***
2011.08.21 09:14
뻐킹삼수벌레 [tmsnfkdlvm**(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지금 그말은 내가 하고 싶은말이니까 영국은 켈트인의 후예가 대부분인데 이건 어떻게 설명?
2011.08.21 09:14
tio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 억양으로 말했다고 얻어맞은 사람도 있는데|118.223.***.***
2011.08.21 09:15
뻐킹삼수벌레 [tmsnfkdlvm**(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지랄 병신아 켈트인 중에 강렬허게 저항하는 놈들만 그쪽으로 쫓겨간거고 현대 영국인은 앵글로색슨이라기 보다는 켈트족이닼ㅋㅋ
2011.08.21 09:15
tio
그럼 영국이 왜 켈트어 안 쓰냐?|118.223.***.***
2011.08.21 09:15
tio
삼수벌레야. 영국이 앵글로색슨이 아니라고?|118.223.***.***
2011.08.21 09:16
뻐킹삼수벌레 [tmsnfkdlvm**(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병신아 계통과 언어가 다른 것은 세계 역사에서 많이 나타났다 그럼 프랑스 새끼들은 켈트인인데 왜 로망스어를 사용하냐?
2011.08.21 09:17
tio
영국이 앵글로색슨이 아니라니까 할 말 없다. 내가 졌다|118.223.***.***
2011.08.21 09:17
치킨스키 [tnsqns78**(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만주족의역사가 고구려의역사겟지
2011.08.21 09:17
tio
프랑스가 켈트야? 게르만 프랑크족이 아니고? 네가 이겼다|118.223.***.***
2011.08.21 09:18
뻐킹삼수벌레 [tmsnfkdlvm**(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프랑크 족은 일부의 지배계층일 뿐이었고 주민 구성은 이전과 그대로 갈리아인이라 불리던 켈트인이었지
2011.08.21 09:19
tio
프랑스혈통은 라틴계가 많고 그리고 프랑크족인데.게르만 혈통. 켈트는 소수인데..네가 이겼다|118.223.***.***
2011.08.21 09:19
roiya
영국과 프랑스의 다수가 켈트족이란 말에 무릎을 꿇었다|118.223.***.***
2011.08.21 09:21
뻐킹삼수벌레 [tmsnfkdlvm**(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윗글 참조 멍청한 새끼얔ㅋㅋ
2011.08.21 09:23
ㅀㅀ// [fgfg**(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문화나 문명이란것 자체가 백성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왕족등 지식인들이 만드는 것임. 백성은 단지 먹을거 생산하는 부속품들 [핡]

신라왕경의 360방 전체도

한국인은 그리스문명의 후예들이다..

이 름 역사

제 목 조센인은 그리스문명의 후예들이다..

석굴암이 그리스 신조각상상들의 영향권안에 잇다는 것 별로 모르드만..

이런 석상들은 다 그리스 신들상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거임..

중국 인도 석상들도 마찬가지..

인도 중국 반도 다 그리스 문명의 아류임..



바얀 [killallwhitepeop**(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세계사 시간에 다 배운다...
2011.08.21 20:39
바얀 [killallwhitepeop**(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다만 항구기들이 세계사를 잘 선택하지 않아서 모를뿐...
2011.08.21 20:40

기원전 그리스,로마 조각vs 5~6세기 신라 조각

기원전 그리스,로마 조각vs 5~6세기 신라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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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 신라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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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제나라를 치지않았다면...

고구려유민 이정기장군은 당나라 산둥반도에 평로치청국(후에 제나라)을 세운다.
이정기는 당나라경제를 무너트리고 당을 멸하려했으나 짧은 나이에 죽고 그뒤에
아들(이납)에 이어 4대황제 이사도가 고구려멸망의 복수를 하려했으나 신라는 고구려,
백제멸망때와 마찬가지로 구원병 3만을 보내서 제나라 후방을 친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신라가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당나라의 멸망이 더욱 가속화됐겠죠.
흉노계 선비족 왕조 당이 무너진 것은 10세기 초반이지만, 7세기 후반부터 당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동북아 최강을 구가하며 수백년년간 대륙의 한 쪽을 지배하던 고구려는 단순한 이웃 나라의 개념을 넘어서는 나라였고, 수의 침입에서 알 수 있듯이 중원의 모든 힘을 기울인다고 해도 멸망시킬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5년도 지나지 않아 국력 소모의 후유증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국력의 지나친 소모를 틈타 서역의 토번이 중원을 급습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패한 설인귀는 백제 유장 흑치상지의 지혜로 겨우 몸만 살아 돌아갔고 당 조정에서는 이에 대해 분노하여 설인귀에게 백의종군의 명령을 내립니다.
고구려를 멸망시키기는 했지만, 백성들까지 복속시키지 못했던 당으로서는 백성을 위무하기 위해 고구려 멸망 당시의 태왕이었던 고보장을 임명하여 국왕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1년만에 이를 폐지하고 직할체제를 구축합니다.
이 1년만에 고보장이 당의 조정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역할을 수행하였던지 정반대의 방향으로 유도되었던지 둘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의 사서를 보면, 아마도 후자의 경우였던 것 같지만, 아무튼 자치통감의 서술을 따른다면, 당으로서도 일정 수준 만족을 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자치통감에서 677년에야 고구려를 멸망시켰다고 기술한 것은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당이 고구려의 문제에서 해방이 되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고, 아니면 신라의 강력한 저항으로 당의 한반도 완전 점령이라는 당초의 목표에서 고구려의 멸망까지로 목표가 전환되었음을 의미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668년 이후 30년 만인 698년 동모산에서 대조영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에 이르렀고, 산동 반도 일대에서는 이정기가 고구려의 후예를 명분으로 새로운 국가를 일으켰습니다.
이정기의 제국 같은 경우는 단순히 이정기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연속하여 절도사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중국의 사서에서는 '하북삼진 하남이진의 난'으로 기록될 정도였습니다.
이정기의 나라는 50년 넘게 지속되었는데, 당시 당의 승상마저 살해하고 당의 운하마저 불능상태로 만들어서 사실상 당이 반쪽만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라에 요청하여 정예병 5만을 지원받고 신라출신의 장수들로 운영되던 부대를 사용하여 겨우 이정기의 후예를 토벌합니다.
민족이 배출한 위대한 장수의 명단에 당당히 실린 장보고의 역사로의 첫 출현은 이토록 민족에 대한 철저한 배신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이 시기에 겹쳐 8세기 중반, 당제국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사건이 바로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반란으로 고구려출신 명장 고선지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고, 당은 군사강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멍청한 황제들과 욕심많은 황제들이 번갈아 등장하면서 나라가 천천히 기울었고 마침내 9세기 후반, '토황소격문'으로 이름을 날린 최치원이 당에서 벼슬을 하던 무렵, 황소와 왕선지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왕선지는 후일 당에 투항하여 역사에서는 이 반란을 '황소의 난'이라고 부르죠.
이때, 황소의 부장 중 주온이라는 장수가 반란이 불리해지자 당에 투항을 하였는데, 당은 이에 감격하여 이 장수에게 '온 몸이 충성으로 되었다'는 뜻의 '전충'이라는 이름을 하사합니다.
하지만, 그토록 감격했던 당 조정의 기대와는 달리 주전충은 당의 황제들을 폐위시키고 죽이더니 당을 멸망시키고 양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 해가 905년인데, 양은 전에도 있었던 이름이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이전의 양과 구분하기 위해 후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결론을 내자면, '안사의 난'으로 목이 반쯤 잘렸고, 질기디 질긴 목숨을 150년간 유지했지만, 주전충이 남은 목을 짓이겨버렸다고나 할까요?
“고구려인 노예, 당나라서 쿠데타”
‘현종 집권’ 이뤄낸 경호 노비 왕모중…
군사·재정 확충해 병권 잡은 뒤 정권 탈취 기도
연세대 사학과 지배선 교수 주장

“노예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이 당나라 병권을 장악, 황제에 대항해 쿠데타를 기도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세대학교 사학과 지배선 교수는 ‘고구려인 왕모중의 발자취’란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하면서 “드러나지 않은 이 인물은 조국 패망 후 당나라로 끌려가 노비로 살았던 고구려 장수 왕구루(王求婁)의 아들 왕모중(王毛仲)”이라고 말했다. 지 교수는 “왕모중은 당시 ‘임치왕(臨淄王)’으로 봉해져 있던 이융기의 호위 노예였다”며 “발군의 능력으로 이융기의 정권 탈취를 도와 그를 황제로 옹립한 뒤, 그 공로로 ‘3공(三公)’의 지위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융기는 당나라 현종(玄宗)의 본명이다.

지 교수는 또 “왕모중은 CEO로서의 능력도 뛰어나 군사력과 재정을 확충, 현종 통치하의 태평성대를 일컫는 ‘개원지치(開元之治)’의 기반을 다지기도 했다”며 “당나라의 병권(兵權)을 장악한 그는 훗날 정권 탈취를 기도, 스스로 황제가 되려 했다”고 주장했다.

▲ 왕모중의 보필을 받아 당나라 최고의 황금기인 '개원의 치'를 이뤘던 당현종 이융기의 모습, 이 그림은 디지털 복원 전문가 박진호씨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재현한 것이다
고 구려 유민사를 연구하며 ‘유럽문명의 아버지 고선지 평전’을 쓰기도 한 지배선 교수는 “고구려인에 의한 당 황실 전복 쿠데타는 이것이 유일한 기록”이라며 “제나라를 세우고 765~819년까지 산동지역을 다스린 이정기·이납 부자가 당나라 전복을 꾀한 바 있지만, 이것은 쿠데타라기보다 국가 대 국가의 전쟁(주간조선 2003년 2월 6~13일자 보도)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왕 모중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그런 인물이 당나라 실세로 존재했었다”는 사실만 알려져 왔을 뿐으로, 그의 출신과 행적에 관한 연구 논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의 지원으로 이뤄진 이 논문은 신·구당서, 자치통감 등의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된 것으로 내년 초에 출간될 예정이다.



현종과 함께 쿠데타… 대장군에 올라

668년 고구려를 무너뜨린 당은 장정 20만명을 잡아가 노예로 삼았다. 장수였던 왕모중의 부친 왕구루도 이때 끌려가 관노가 됐다. 왕모중이 태어난 시기는 고구려가 패망한 지 10여년 뒤인 681~683년. 노비의 신분을 이어받은 왕모중은 나이가 비슷한 ‘임치왕’ 이융기(685년생)의 수행 노예가 됐다.

이융기는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사냥을 즐겼던 그는 용맹한 사람을 만나면 돈과 음식을 하사해 자신의 사람으로 삼았다. 총명하고 깨달음이 빨랐으며 고구려인답게 기마와 궁술에 능했던 왕모중은 이 과정에 적극 개입, 세력을 규합해 이융기의 절대적 신임을 얻게 된다.

이융기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710년이었다. 황제 중종이 황후 위씨(韋后)와 딸 안락(安樂)공주에 의해 독살된 것이다. 중종의 조카였던 이융기는 “위후 일파를 제거해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거사를 일으켰다. 왕모중은 이 과정에서 황궁 수비대를 사전 장악, 거사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이융기 군사는 왕모중의 활약에 힘입어 황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위후와 안락공주를 살해, 중종 시해 세력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거사를 이뤄낸 임치왕 이융기는 ‘평왕(平王)’으로 왕호를 높여받은 뒤, 문무 주요 관직에 자신의 측근들을 심었다. 위후를 살해한 종소경(鐘紹京)은 ‘중서령’으로, 위후 제거 후 조칙을 쓴 유유구(劉幽求)는 ‘중서사인’으로 임명해 정사를 관장하게 했다. 또 거사에서 무공을 세운 설숭간(薛崇簡), 마사종(麻嗣宗), 갈복순(葛福順) 등과 임치왕 경호를 맡았던 이의덕(李宜德) 등을 장군으로 임명했다. 왕모중도 이때 장군으로 파격 제수됐다.

지배선 교수는 “이융기를 가장 가까이서 보필한 사람이 한족이 아닌 고구려인이란 사실에 의미를 두고 싶다”며 “이 사실로 미뤄 당시 중국 사회에서 고구려인들이 다양한 활약을 벌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나라를 장악한 이융기의 남은 과제는 황제가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주변의 눈’을 의식한 이융기는 명분을 쌓기 위해 중종의 동생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예종’을 황제로 옹립한다.

▲ 당나라 상류층들이 즐겨던 격구 장면, 이 그림은 디지털 복원 전문가 박진호씨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재현한 것이다.
실 권을 쥔 이융기는 예종의 장남이자 자신의 맏형 이성기를 제치고 황태자가 됐다. 그가 착수한 작업은 쿠데타의 주축이었던 좌우영(左右營)을 격상시키는 일이었다. 이융기는 좌우영의 이름을 ‘용무군(龍武軍)’으로 바꾼 뒤 최고의 대접을 해줬다.

당 서(唐書) ‘왕모중전(王毛仲傳)’은 용무군에 관해 흥미로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당시 양가 자제들은 군역과 요역을 회피했다. 하지만 용무군만은 예외였다. 앞다퉈 들어가려 뇌물을 바칠 정도였기 때문에 (1000명이었던) 부대 규모가 수천명으로 늘었다. 용무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는 것이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예종이 즉위한 ‘격변의 해’ 710년 하반기, 왕모중은 3품의 품계를 받고 대장군의 지위에 오른다. 그리고 야심가 이융기는 712년 자신의 뜻을 달성, 천자의 자리에 등극한다. 그가 훗날 ‘개원의 치’를 이룬 황제 현종이다.

노예 출신의 ‘대장군’ 왕모중은 713년 다시 한 번 부각된다. 7명의 재상 중 5명을 장악, 권력을 휘두르던 예종의 누이 태평공주가 ‘현종 폐위 음모’를 꾸민 것이다. “태평공주측에서 병사를 동원, 7월 4일 침입해 올 것”이란 극비정보를 입수한 현종은 역공을 취했다. D데이를 하루 앞둔 7월 3일, 왕모중과 그의 병사 300명을 동원해 공주 일행을 주살해 버린 것이다. 현종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재상 숙지충을 비롯한 태평공주 측근 전원을 죽이고, 자신과 고종사촌인 공주의 아들들까지 모조리 주살한 뒤, 이미 세상을 뜬 공주 망부(亡夫)의 시체를 꺼내 부관참시했다.



병력·재정 확충해 ‘개원의 치’ 틀 마련

사 태를 신속하게 ‘정리’한 사람은 왕모중이었다. 그 공로로 그는 7일 뒤인 713년 7월 10일, 보국대장군·좌무위대장군·검교내외한구 겸 지감목사로 임명되면서 국공(國公)의 작위와 함께 장안의 저택과 식읍 500호를 받았다. 황족을 제외하면 진압에 공을 세운 인물 중 최고의 포상이었다.

지 교수는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당시 군사력의 핵심이었던 말(馬)을 관리하는 직책인 검교내외한구”라며 “이것은 현종 이융기가 임치왕에서 평왕으로 봉해질 때 함께 받았던 관직이자, 훗날(754년) 현종의 양아들로 총애받았던 안록산이 받기도 했던 요직”이라고 말했다. “황실과 군사 양쪽에 말을 공급하는 핵심임무를 독점함으로써 왕모중이 물자 수송과 병력관리의 맥을 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왕모중은 검소했다. 황제로부터 호화저택을 하사받았음에도 ‘병마양성’을 위해 변방의 처소에서 사병과 함께 생활했으며, 사심없이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다. 게다가 CEO로서의 경영능력도 뛰어났다. 목동 1000여명을 모집해 그들에게 방목을 맡기는 현대적 개념의 ‘전문가 아웃소싱’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왕모중은 24만마리이던 병마의 수를 43만마리로, 3만5000두였던 소를 5만두로, 1만2000마리였던 양을 28만6000마리로 늘렸다. 그는 죽은 짐승도 버리지 않았다. 가죽을 팔아 비단 8만필을 구입했고, 동맥·목숙 등의 사료를 준비해 겨울을 대비했다.

사욕을 부리며 재물을 축적하던 다른 관리들과 달리 왕모중은 이익을 재투자, 매년 수만석의 잉여 물자를 확보해 황제에게 추가로 바쳤다. 현종은 왕모중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노예 출신인 그를) 연회석에서 황제의 형제·자식들과 나란히 앉게 해 ‘왕’에 준하는 대우를 해 줬다”는 당시의 기록은 그에 대한 현종의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당서(唐書) 기록에 따르면 “현종은 연회 때 왕모중이 보이지 않으면 근심하는 표정을 지었으며, 그와 밤새워 대화를 나누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밤을 새고 난 뒤에도 그 다음날이 저물도록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는 것이다.

당 시의 전쟁에선 기병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말은 최고의 군사자원이었다. 왕모중은 빠르고 멀리 달릴 수 있는 병마를 단시일 내에 확보하고 재정적 확충을 이룸으로써 당이 ‘세계국가’로 뻗어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현종의 정치적 안정을 일컬었던 ‘개원의 치’는 왕모중이 닦아 놓은 재정적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황제의 총애는 멈추지 않았다. 현종은 왕모중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감목송(監牧頌)’을 지어 부르게 했으며, ‘이씨’라는 여인을 부인으로 하사했고, 그녀에게 ‘국부인(國夫人)’의 칭호를 내렸다. 또 왕모중의 어린 아들에게는 5품 벼슬을 제수하고 황태자와 함께 놀 수 있는 특권을 내렸다. 왕모중은 상승을 거듭, 721년 당나라 북부의 병력을 총괄하는 ‘지절충삭방도방어토격대사(持節充朔方道防禦討擊大使)’로 임명돼 중국 북부의 군권을 장악했고, 4년 뒤인 725년엔 1품 고관인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임명돼 ‘3공(三公)’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파격적인 황제의 총애는 환관들의 질시를 불러왔다.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물욕·권력욕이 유달리 강했던 환관들과 강직한 성품의 왕모중은 애초에 맞는 궁합이 아니었다. 왕모중은 드러내놓고 환관들에게 모욕을 주곤 했다. 그러자 환관들은 은밀하게 왕모중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여기서 주축이 된 사람이 훗날 현종에게 양귀비를 소개하는 환관 고력사(高力士)다.



“당나라 황제를 노려라” 또 다시 쿠데타

환관들의 ‘작업’은 은밀하고 집요하게 진행됐다. 틈을 노리던 그들에게 기회가 왔다. 729년 6월, 황제 호위를 담당하는 ‘용무군’ 대장 갈복순의 아들과 왕모중의 딸이 결혼을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도가들은 혼인을 통해 세력 결속을 꾀한다. 권력자의 입장에선 이것이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현종의 경우엔 특히 그랬다. 당나라의 병권이 ‘한 집안’으로 집중됐기 때문이었다.

“장군들이 왕모중을 따르는 상황에서, 그가 황실 경비대장 갈복순과 인척관계를 맺은 것은 좋지 못한 일입니다. 게다가 왕모중은 소인배인지라 총애가 지나치시면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현 종은 탁월한 전략가였다. “짐은 그대들의 충정을 알겠노라.”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지 않아도 이상적으로 비대해진 왕모중의 권력이 거슬리던 판이었다. 현종은 “간언 내용을 극비에 부칠 것”을 명했다. 만에 하나 왕모중 제거 의사가 새나갈 경우 역공을 당할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태평공주를 제거할 때, 왕모중과 함께 역공을 폈던 현종이다. 그는 은밀하게 작전을 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갈등이 표출된 것은 730년이었다. 왕모중이 황제에게 ‘병부상서’ 자리를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병부상서는 당의 군사력 전체를 총괄하는 요직이었다. 왕모중을 제거하려 마음먹은 황제가 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 현종은 드러내놓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왕모중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왕모중의 행위는 당 지배질서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었다. 이의덕(李宜德), 당지문(唐地文), 왕경요(王景燿), 고광제(高廣濟) 등 당대의 무장 수십 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독자적 군사력을 키워온 왕모중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황제에 대한 도전은 황실을 전복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었다. 게다가 왕모중에겐 힘이 있었다. 그가 더이상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현종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왕모중은 자신의 군사력을 중심으로 현종에게 대항할 뜻을 굳혔다. 그는 더 많은 장군들을 포섭, 세력기반을 확고하게 다져갔다. 현종도 자위 수단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왕모중과 대립관계에 있는 환관들을 동원해 정보수집에 착수, 왕모중의 비리를 철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종의 권한이 강화될수록 환관들의 권한도 그에 비례해 커지는 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왕모중은 흥분했다. 그는 현종의 조서를 갖고 온 환관들에게 노골적으로 모욕을 줬다. 조서를 받드는 환관에겐 황제에 버금가는 예를 갖추는 것이 당시 신하의 본분이었다. 왕모중은 더이상 현종의 신하가 아니었다.

먼 저 칼을 뽑은 것은 황제였다. 왕모중이 극비리에 병기를 수집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황제는 측근 엄정지(嚴挺之)를 등주자사·태원소윤에 임명, 왕모중의 군사기반인 북방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했다. 왕모중도 당시 최대의 군수기지였던 태원·삭방·유주 등지에서 군량과 병마·무기를 사들이며 쿠데타 계획을 진행시켰다.

때는 731년 정월. 현종은 왕모중을 따르는 장군들과 왕모중의 아들들을 강등시켜 변방 한직으로 내모는 신년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그리고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왕모중 세력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양 대 세력은 충돌했다. 하지만 ‘두 세력이 어디서 어떻게 부딪쳤는가’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문헌은 전해지지 않는다. 단지 “왕모중이 패하여 죽자, 황제는 엄정지의 충성을 평가해 그를 형부시랑으로 불러들이고, 이후 고위직인 ‘태부경(太府卿)’에 임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지배선 교수는 “왕모중의 사망에 대해 구당서(舊唐書)는 ‘현종이 왕모중을 죽이도록 조서를 내려, 영릉(零陵)에서 목매달아 죽였다’고 적고 있다”며 “이 두 가지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전투에서 패한 왕모중이 (장안에서 직선거리로 800㎞ 떨어진) 호남성 서남쪽 영주(永州)로 귀양을 가, 그곳에서 죽음을 당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훗날 현종이 애첩 양귀비를 죽일 때도 목을 매달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 당시 조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을 처형할 땐 목을 매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발해의 서쪽 강역문제는 요동의 지배여부와 집결된다. 이하 당나라의 요동지배는 중국 측 기록에 따른다하더라도 발해가 성립된 지 6년만인 714년 요서지방으로 완전 철수하였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 그 이전에도 실제로 장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하 간단히 이에 관계된 자료들을 간추려 본다.

1. 안동도호부는 발해 건국 이후 요동에서 사라졌다.

1) 686년 보장왕의 손자 고보원을 조선군왕으로 봉해 안동도호부의 옛 주민(舊戶)을 맡겨 통치(統攝)하려 하였으나 끝내 실행하지 못했다.(구당서 고려전) ---- 이 때 발해가 성립된다.
2) 699년 또 보장왕의 아들 고덕무를 안동도독에 제수하여 본번(本蕃)을 통솔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안동(도호부)에 있는 고구려의 옛 주민이 점차 줄어들어 돌궐, 말갈 등으로 흩어지 자 고씨의 군장은 마침내 끊기고 만다.(구당서 고려전) ---- 발해가 성립된 후 형식적으로나마 안동도호부를 유지하려했으나 실패한 기록이다. 여기서 말갈 땅으로 간 고구려인들은 바로 발해에 흡수된 것을 말하며 적어도 이때부터는 요동반도가 발해 땅이 된 것이다.
3) 714년 - 당나라, 요서지방 평주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다.


2. 732∼733 발해의 등주 공격 때 요동에는 당의 세력이 없었다.

732년 9월 발해 장군 장문휴가 이끄는 발해 원정군은 바다길로 당나라 등주를 공격하여 등주자사 위준을 살해한다. 만일 가탐의 도리기에 나오듯이 압록강 하구에서 130리쯤 올라간 박작성이 국경선이라면 당나라를 침략할 대부대가 압록강 하구를 지키는 당나라군부터 무찔러야 했을 것이다. 발해 군이 현재 산동성인 등주를 공격하려면 반드시 압록강 입구를 떠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다 요동반도 끝에서 고군산 열도를 지나가야 한다. 만일 당나라가 요동반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면 발해군의 대선단이 아무런 저항없이 등주를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요동반도 에 당나라 세력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발해가 요동반도를 치지 않고 등주를 친 것도 요동반도를 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요동반도에 당나라 세력이 있으면 그곳부 터 쳤을 것이다. 발해는 해군의 출병과 거의 같은 시기에 육로로 요서지방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당나라는 문제를 일으켰던 대문예를 유주에 보내 군사를 모아 싸우게 하고, 유주 절도사가 [하북채방처치사를 겸임하도록 해 상주, 낙주, 패주, 기주, 위주 등 총 16개 주와 안동도호부(평주)의 병력까지도 통솔하게 하였다 (자치통감 권 213 당기 현종 개원 20년) 한편 당나라는 당나라에 와 있던 신라 왕족 김사란을 신라에 보내 남쪽으로부터 발해를 침공하도록 한다(삼국사기 권 8, 신라본기 성덕왕 32년 7월).


3. 요사 지리지에 반영된 요동반도의 발해 영토

요동반도가 확실한 것만 몇 곳 간추린다(요사 권 38 지제8, 지리지 2, 동경도).
동경 요양부(東京 遼陽府) - 본래 조선(필자 주 : 단군조선)의 땅이다(本朝鮮之地). …… 당나라 고종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여기에 안동도호부를 세웠는데 후에 발해 대씨의 소유가 되었다(唐高宗平高麗 於此置安東都護府, 後爲渤海大氏所有)
진주(辰州) 봉국군 절도 - 본래 고구려 개모성, 당 태종이 이세적을 만나 개모성을 격파 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발해가 개주(蓋州)로 바꾸었다.
노주(盧州) 현덕군 자사 - 본래 발해 삼노군이다. 옛날 5개 현으로 산양, 삼노, 한양, 백 암, 상암이었는데 모두 폐지했다. 철주(鐵州)는 본래 한나라 안시현이었는데 고구려 때 안시성이 되었다. 당 태종이 쳐들어 갔을 때 항복하지 않자 설인귀가 흰옷을 입고 성을 올라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발해 때 주를 두었는데 본래 위성, 하단, 창산 용진의 4개 현이다.
암주(巖州) 백암군 하 자사 - 본래 발해 백암성, 태종이 빼앗아 심주에 속하게 했다.
발해의 당 공격은 해상과 육로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상 루트로는 압록강 하구에서 출발해 등주를 공격했고,육로로는 영주로 가는 길을 통해 거란과 가까운 마도산(馬都山)으로 내달아 당을 공격했다. 발해의 당 공격은 무왕 시기에 이미 요동반도가 발해 영역이지 않고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발해 역사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의미가 크다.
http://blog.daum.net/hearo9mars/7072074
발해는 건국에서 멸망(698~926)에 이르기까지 228년간 15대를 이은 중앙집권적 왕조로서 독자적인 국가운영체제를 갖춘 독립국가였다. 1대인 고왕 대조영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뒤, 2대 무왕은 그 이름에 걸맞게 정복활동을 벌여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그의 뒤를 이은 문왕은 발해 전체 역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7년간이나 나라를 다스리면서 내치에 힘을 모아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그후 4대부터 9대까지 25년 동안 6명의 왕이 교체되는 일시적 내분기를 겪고나서는 10대 선왕에 이르러 다시 왕권이 강화되고 대외정복활동을 마무리하여 9세기 전반에 최대의 판도를 확보하여 다시 중흥을 맞이하였다.

발해의 건국과 영토확장 및 중흥의 주요 역군은 건국초기부터 고구려의 상무기풍을 물러받은 40만 강군이다. 이것은 8세기 전반 49만을 헤아리는 당나라의 군사력과 막상막하였다.
‘발해인 셋이면 호랑이 한 마리를 당해낸다.’ ‘풍속에 말타기와 사냥을 즐긴다’라는 사적의 기록은 무예를 숭상하는 발해인들의 용감한 기상을 전해준다.

발해와 당이 전쟁을 하게 된 계기는 당이 흑수말갈을 통해 발해를 견제하려 했던 사건에서 비롯한다.
대 문예는 다음과 같이 당나라 공격을 반대하였다. "흑수가 당의 벼슬을 청하였다 하여 그를 바로 치고자 한다면 이것은 당을 저버리는 것이다. 당은 사람의 많음과 군사의 강함이 우리의 몇 배나 되는데,하루 아침에 원수를 맺는다면 다만 스스로 멸망을 부를 뿐이다. 지난날 고구려가 강병 30여만으로 당과 맞서 복종하지 않다가,당병이 한번 덮치매 땅을 쓴 듯이 다 멸망하였다. 오늘날 발해의 인구가 고구려의 몇 분의 일도 못되는데,그런데도 당을 저버리려 하니,이 일은 결단코 옳지 못하다."고 대문예는 만류하였다. 그러나 무왕은 듣지 않았다. 참고로 발해 건국 초기의 인구는 78만명에 불과했으나 고구려 유민을 지속적으로 흡수하고 거란족과 말갈(=여진)족을 직접 통치하게 됨에 따라 전성기 시절 인구는 330여만명으로 늘어났다.

위의 기록을 통해 발해의 인구와 군사력이 330여만명-40만 강군이라면, 멸망시의 고구려는 발해의 인구와 군사력의 몇 배나 되는 대제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말기의 인구를 최소한 발해의 2배로 잡는다 하더라도 660여만명이라 볼 수 있고 그렇다면 고구려 전성기에는 1000여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대국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왕은 결국 당나라를 응징하기 위해 732년에 그의 장수 장문휴(張文休)를 보내어 등주(登州,현 山東省 蓬萊)를 공격하면서 양국은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에 당 현종은 대문예를 유주(幽州)에 파견해 군사를 징발하여 발해군을 치게 하였다. 또 당나라에 묶고 있던 신라 김사란(金思蘭)에게도 신라 군사를 내어 발해의 남쪽 국경을 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신라는 "마침 산이 험하고 날씨가 추운데다 눈이 한길이나 내려서 병사들이 태반이나 얼어 죽어 전공(戰功)을 거두지 못한 채 돌아 왔다."고 전한다.

무 왕은 몰래 동도(東都)에 사신을 보내 자객을 사서 천진교(天津橋) 남쪽에서 문예를 찔러 죽이려 했다. 하지만 실패하고 자객들은 모두 잡혀 죽었다고 한다. 무왕이 당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에 대한 깊은 원한과 주변의 돌궐과 거란도 당과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발해 무왕의 당나라에 대한 응징 의지가 결정적이었다.

발해의 당 공격은 해상과 육로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상 루트로는 압록강 하구에서 출발해 등주를 공격했고,육로로는 영주로 가는 길을 통해 거란과 가까운 마도산(馬都山)으로 내달아 당을 공격했다. 발해의 당 공격은 무왕 시기에 이미 요동반도가 발해 영역이지 않고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발해 역사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의미가 크다.

이렇게 정연한 국가체제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발해는 시종 당나라와는 나라 대 나라의 국가관계 차원에서 영활한 화전 양면의 전략전술로 응수해나갔다. 발해는 건국초기부터 당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거란 등 가까운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전대인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원교근공’(遠交近攻: 먼데와 교섭하여 가까운 데를 치다) 정책의 일환으로 멀리 서천한 돌궐에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에 위압당한 당나라 중종은 705년 특사를 보내 과거 고구려와 그 유민들에 대한 잘못을 사과하고 발해의 건국을 축하하는 한편 수교를 제안한다.
<신당서>가 전하는 바와 같이 발해는 자신들의 연호를 줄곧 사용했으며, 시호도 스스로 만들어 썼다. 문왕의 넷째 딸인 정효공주무덤에서 발견된 묘지명에는 왕을 ‘황상(皇上)’이라고 부를 정도로 발해는 당나라와 동격의 황제국이었다.
중국 지린성에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고, 황제국을 지향했음을 알려주는 발해 황후의 무덤이 발굴됐다. 최근 중국사회과학원이 발간한 ‘고고(考古)’(2009년 제6기)에 실린 ‘발해왕실묘장 발굴 간보’에 따르면 2004~2005년 지린성 허룽시 룽하이 마을 룽터우산 고분군에 있는 발해왕실무덤에서 고구려 조우관(鳥羽冠)의 전통을 계승한 금제관식이 발굴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발해국 3대 문왕(재위 737~793년)의 황후 효의왕후와 9대 간왕(재위 817~818년)의 황후 순목황후의 묘지(墓誌)가 출토됐다. 그런데 순목황후의 묘지에는 “발해국 순목황후는 간왕의 황후 태(泰)씨이다”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한상 대전대 교수는 “출토된 금제관식은 고구려 조우관(새 깃털모양 관)의 전통을 잇고 있다”면서 “새 날개의 이미지를 세 가닥의 식물 이파리처럼 도안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는 당나라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순수한 발해산이며 고구려 조우관”이라면서 “여백을 끌로 쪼아 문양을 드러내는 ‘물고기알모양(魚字文)’을 활용하면서 발해 특유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절정의 금속공예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송기호 서울대 교수는 “발해가 고구려의 전통을 이으면서 황제국의 위상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는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에 불과했다는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를 뒤엎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당나라는 허구의 종족 짱골라의 왕조가 아닌 흉노계 선비족 왕조다.

당나라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발해를 ‘해동성국’, 즉 바다 동쪽의 융성한 독립강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융성은 14대까지 이어오다가 15대에 와서 거란의 내침으로 마감되고 만다. 그러나 요동반도에 끌려간 발해유민들은 ‘후발해국’이니 ‘대발해국’이니 하는 이름의 후계국들을 세워 부흥운동을 근 2백년 동안이나 벌인다.
신라와의 관계에 신경을 쓰던 일본은 발해의 동태를 알아보기 위해 720년에 자진해 사신을 파견한다. 발해는 아랑곳하지 않다가 당과 흑수말갈, 신라간의 밀착이 엿보이자 군사적 동맹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 7년 후에 무관 출신의 사신을 보내 국교를 맺는다. 그 후 양국관계는 신속하게 발전하는데, 전기에는 주로 군사외교이나, 후기에 와서는 경제문화교류가 주류를 이루면서 일본에 대한 발해의 문화적 영향이 커진다.

<속일본기>를 비롯한 일본 사적의 기록과 일본에서 발견된 ‘발해사 목간’이나 ‘견(遣)고려사 목간’ 등 유물이 증언하다시피 두 나라간에는 11회의 사신교환이 있었으며, 문물교류도 상당히 빈번하였다. 871년 일본에 간 발해사신들이 첫날 관무역에서 얻은 이익만도 일본화폐로 40만 냥,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6억 6천만엔이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발해사신들은 일본 문인들과 작시를 주고받는데, 오늘까지 남아있는 발해 한시 10수 중 ‘밤에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같은 9수는 이들 발해사신들이 지은 것이다. 발해악이 일본 궁중음악의 하나로 된 것도 이무렵이다.

발해문화는 당문화를 비롯한 여러 문화를 받아들어 융화시킨 독특한 복합문화다. 무덤양식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돌무지 무덤이 위주이지만 당의 벽돌무덤이나 말갈의 흙무덤도 받아들였다. 당삼채를 본받아 삼채도기를 구워냈으며, 금 알갱이를 촘촘히 박는 서역의 누금기법으로 정교한 금속장식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발해 고유의 문화상도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몇 사람의 뒤를 따라 여러 명이 빙빙 돌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답추(踏鎚) 춤이나, 연꽃잎 무늬에서 3국은 8개 잎을 기본으로 하는데 비해 6개 잎으로 꾸미는 기법을 쓴 것이 그런 사례다. 또 여러 명을 합장하고 그 무덤 위에 건물을 짓는 건축술 등도 발해만의 문화현상이다.

발해의 유물 중에는 몇가지 주목되는 것이 있다. 연해주의 옛 발해성인 노브고르데예프성 밖 취락지에서 은화 한 점이 발견되었는데, 앞면에 왕관과 함께 ‘부하라의 군주 짜르’란 소그드 문자가 새겨져있는 점으로 미루어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은화임이 확실하다. 교역수단인 이 은화는 북방 실크로드의 초원로와 연결되는 거란도(일명 ‘담비의 길’)를 따라 발해까지 유입된 것으로서 수만리 떨어진 두 지역간에 교역이 진행되었음을 시사한다.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불교와 고대 동방기독교간의 융합모습을 보여주는 유물들의 발견이다. 발해의 솔빈부 아브리코스 절터에서 십자가가 발견되고, 동경용원부(현 훈춘)에서는 삼존불의 왼쪽 협시보살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는 상이 출토되었다. 그밖에 발해의 서변에 자리한 우순(撫順) 지역에서도 수백점의 십자가가 발견되었다. 그런가 하면 신라의 경주에서도 석십자가와 성모 마리아상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7세기 중엽 중국에 들어와 약 250년 동안 성행한 고대 동방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경교)가 9세기 전반 탄압을 받고 축출될 때, 발해 땅에 파급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도 경교는 불교와 습합하는 방법으로 전파를 시도하였으니, 그 맥락에서 보면 발해에서 두 종교간의 융합관계는 이해가 될 것이다. 배타가 아닌 어울림의 문화를 꽃피운 발해인들의 슬기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렇게 발해는 완비된 국가체제와 주권국가로서의 확고한 국제성을 지니고 사통팔달한 국제교통망을 통해 세계와 교류하고 문화를 주고받은 대제국이었다. 이러한 발해를 아예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지방정권 운운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용서못할 거역이고 오만이며, 우러 겨레에 대한 야멸찬 멸시에 다름아니다고 정수일 교수는 말한다.

또 홍콩의 발해사 학자인 김광석(金光錫.62) 홍콩 능인(能仁)서원 한국학과 교수는 중국의 발해사 편입 시도는 중화 패권주의에 다름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지난 91년 홍콩에서 `발해족의 형성과 그 사회형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해외 학계에서 처음 발해사 연구로 인정받은 한국학자다.

김 교수는 "`말갈(靺鞨)'이라는 부족명은 중국이 이민족을 경시해 붙여준 명칭"이라며 사실은 고대 한민족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말 갈족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었던 예맥계 속말말갈이 발해 건국에 기여했는데 속말수(粟末水.지금의 제2쑹화강)에서 유래된 속말말갈은 부여 계통으로 고구려와 혈연, 지역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수한 철기문화를 자랑했다. 삼국시대에도 고구려는 오히려 말갈부족과 연합해 신라와 백제를 공격하는 일이 잦았다.
고구려 멸망후엔 고구려 유민들이 속말말갈 사회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발전의 계기를 맞았다. 속말말갈 외에 동옥저, 남옥저의 후예인 백산(白山) 말갈도 역시 예맥계로 발해 건국에 참여했다.
697년 대조영은 동모산(東牟山)에 성을 쌓고 스스로 진국왕(震國王)이 됐으며 713년엔 발해로 개칭했다.
발 해는 당시 나라명에 `국(國)'을 사용했다. 이는 자주독립 공동체였다는 의미이다. 당시 발해문자에 능통해 발해 외교문서의 번역을 맡기도 했던 시선(詩仙) 이백(李白)도 발해를 고려(고구려의 의미)나 백제로 부르며 외국으로 취급했다는 기록이 이백의 시문집 옥록총담(玉록<鹿+土>叢談)에 기록돼 있다.
이백의 혁만서(하<口+赫>蠻書)에선 또 당나라 사람들이 발해를 습관적으로 고려, 백제로 칭했다는 말이 나온다.

10세기초 발해는 귀족 권력투쟁과 국정 불안으로 사회모순이 커지면서 925년 거란의 야율 아보기(耶律 阿保機)의 침략을 초래한다.
1 년만에 홀한성(忽汗城)이 함락되고 애왕(哀王)이 투항함으로써 발해는 229년만에 역사에 종언을 고했다. 고구려계인 고영창(高永昌) 등에 의한 발해 부흥운동이 세차례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아보기는 그러나 곧바로 발해국 영토에 동단국(東丹國)을 세우고 태자를 인황왕(仁皇王)으로 앉히며 발해국 계승을 선언했다.

당시 발해 유민 300여만명중 190만명은 동단국에서 거란의 직접 통치를 받았고 나머지 110만명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중 10만여명은 고려로 넘어갔고 60만명은 여진으로 도피했으며 1만명은 일본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왕족 2명, 귀족 25명을 포함 발해 유민이 대거 고려로 들어오자 고려는 이들을 후대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발해는 본래 우리의 친척 국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동단국은 이후 동거란으로 국명을 바꾸면서도 발해의 행정체제와 규모를 그대로 유지했다"며 사실상 동단국은 발해국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0090110&

발해는 거란 이후 동북지방의 주도세력이 된 여진과도 특수관계를 맺고 있었다.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6/10/25/200610250500036/200610250500036_1.html

흑수말갈이 합류한 여진의 금나라는 당시 동북지구에서 최고 문명을 자랑하던 발해를 대거 포섭해 끌어들였다. 금나라의 역대 황제 가운데 발해족을 생모로 둔 황제는 해릉왕, 세종, 위소왕 등 3명에 이른다.
현재 북한 평양에 발굴 터와 건물 유구 일부가 보존돼 있는 8만6천여평 규모의 고구려 최대 정궁인 안학궁(安鶴宮)

안 학궁은 427년 장수 태왕이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긴 뒤 축조한 성으로 그 중심이 안학궁이었다. 안학궁은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뒤를 이은 장수태왕의 국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궁궐로, 우리나라 정궁 역사상 최대 규모다. 근세조선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높이가 34m인데 비해 안학궁의 정전인 중궁은 87m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높이 2m가 넘는 치미(기와장식품)가 발굴되기도 했다. 안학궁은 흉노계 선비족 왕조 당나라 최대 왕궁인 대명궁 함원전 67.5m보다 규모가 컸고, 건립시기도 200년이나 앞선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 명(明)·청(淸) 시대의 궁전인 자금성 태화전은 60m에 불과하다.

자금성 태화전은 동서 60m, 남북 33m / 경복궁 근정전은 앞면 30m,·옆면 21m /
고구려 안학궁 - 남궁은 앞면 62m & 중궁은 앞면 87m, 옆면 27m

자금성(원래 9999칸이었고, 현재 8800여 칸)은 둘레가 3.52km이다.
반면 경복궁(원래 7481칸이었지만 현재 700여 칸이다. 경복궁의 일부가 일제에 의해 허물어졌고 현재는 10분의 1정도가 남아있다)은 둘레가 3.26km이다.

자 금성 안에 나무가 없는 것은 자객이 나무에 숨어 성 안의 사람을 공격할까 봐서이고 또 다른 이유는 궁 안의 나무가 황제의 위엄을 가린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나무 없는 자금성은 바람이 쌩쌩~ 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자금성의 황제들은 겨울궁전을 따로 만들어 겨울에는 자금성을 떠나 겨울궁전에서 생활하며 집무를 보았다고 한다.

참고로 경복궁 근정전 내부가 신하들이 옥좌 앞에 도열해서 국사를 논하기에는 너무 좁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자금성 태화전 역시 신하들이 도열할 내부공간은 별로 없었다. 태화전은 가로로 길게 건설되어 배치되어있고 그 직각 방향으로 문이 있어서 옥좌가 그 방향으로 되어있으니까말이다. 웅장한 태화전도 옥좌 앞에서 출입문까지 별로 공간이 없었다. 둘다 조회나 의식에 쓰였고 신하들은 광장에 도열했던 거였다.

정치·문화적으로 볼 때 중원을 압도하며 동북아시아 최강국의 면모와 증거를 안학궁에서 깊게 엿볼 수 있다.
고 구려 문화는 당시,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역사 전체의 중심문명이었다. 당나라의 왕릉, 궁성 유적에도 고구려의 영향은 드러난다.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선문대 이형구 교수는 원인을 고구려 멸망 후 유민이 당나라에 유입되면서 문화선진국이던 고구려의 문화가 전파되었다고 말한다.
부여-고구려-백제가 비슷한 의복을 입고, 비슷한 음식에 비슷한 언어를 갖고 있었다는 기록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으며 백제토기와 신라의 황금장식도 고구려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또 발해의 상경성은 고구려와 당나라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다. 당나라 장안성의 주작대로와 발해의 주작대로는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을까?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도 엿볼 수 있는 사신도? 어쨌든 발해는 건축구조에서 온돌을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고구려의 문화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해는 고구려語 썼던 황제국”동북아역사재단 ‘발해의 역사와 문화’ 펴내

발 해사에 대한 국내외 학계의 최근 연구성과를 집대성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이 최근 발간한 ‘발해의 역사와 문화’는 발해가 독자적인 연호와 시호(諡號)를 사용하고 스스로를 황상(皇上)으로 칭하는 ‘황제국’이었음을 밝혔다. 한마디로, 발해가 자주적 왕조였음을 학술적으로 규명한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위원 등 22명의 관련 분야 전문가를 비롯, 중국·일본·러시아의 학자까지 참여한 책은 발해의 각종 제도 및 외교관계, 사회, 문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책의 주요 논지를 소개한다.

◆ 발해는 자주적 왕조국가였다 = 특히 발해가 독자적인 연호와 시호를 사용했음을 중국의 정사(正史)인 ‘신(新)당서’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신당서는 이같은 발해의 움직임에 대해 ‘사사로이’ 한 것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하는 한편 발해의 자주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발해는 황상을 자칭하는 황제국이었으며, 대외적으로도 일본에서 스스로를 부여의 풍속이 남아 있는 ‘고려국’이었음을 자칭했다.

◆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했다 = 발해가 국제 교류에서 고구려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됐다.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기록에 의하면 서기 739년 발해 사신 이진몽(已珍夢) 일행이 일본에 당도, 이듬해 정월 조회에 참석했는데 발해 사신과 함께 ‘신라학어(新羅學語)’라는 통역사가 나란히 서 있었다고 한다. 신라학어란 언어를 배우고자 신라로부터 일본에 파견된 학생으로 발해 사신의 통역을 담당하기 위해 배석한 인사였을 것이다. 이는 발해 사신과 신라학어의 언어가 서로 소통 가능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로서, 발해 사신이 신라어와 통하는 고구려어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의 사정으로 보면 발해 - 통일신라사이에는 하나의 민족으로 보는 정신적 흐름이 분명히 발견된다. 통일신라(統一新羅)는 발해를 북조(北朝), 또는 북국(北國)이라고 명백히 지칭하고 있다(『삼국사기』권 10 「신라본기」; 권37 지리지). 이 당시에도 상당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통일신라가 발해에 대하여 북조(北朝)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우리가 한반도 북쪽을 북한(北韓)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즉 통일신라는 발해와 현재는 대립하고 있지만 결국은 통일이 되어야할 동족(同族) 전체의 일부라는 의식이 있었다.

참고로 인구학적으로 범위를 최대로 좁혀서 따진다면 남한은 신라의 후예라기 보다는 부여의 후예가 더 정확할 것입니다. 고구려와 백제 및 발해는 모두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국가들이죠. 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국명은 코리아로 불립니다. 이 역시 거슬러 올라가자면 고구려에서 유래된 말이죠.
인구 비율로 따져도 신라의 인구보다는 고구려와 백제 계통의 인구가 훨씬 더 우세했습니다.
실 제로 삼국시대 신라의 인구는 백제의 인구 절반도 채 안 되었습니다. 다만 당나라의 개입으로 반도를 차지할 수 있어서 그렇지. 당나라의 개입이 없었다면 신라는 오히려 고구려-백제 연맹에게 복속되었을 겁니다. 그러니 남북국시대 신라의 인구에서 신라계는 적었습니다. 오히려 신라에 병합된 한반도 이북과 이남에 있던 고구려-백제계 백성들이 훨씬 더 많았죠.
이것이 나중에 중세고려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 발해의 국제교역로 = 발해가 ‘일본도(道)’ ‘신라도’ ‘등주도’ ‘영주도’ ‘거란도’ 등 다섯 개 교통로를 국제교역로로 이용했음을 사료를 통해 밝혀냈다. 특히 윤재운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발해는 선박의 규모가 최대 300t에 이르는 해상무역의 강국이었다”며 “당나라에 120여 회, 일본에 34회의 공식 외교사절단을 파견했을 정도로 해외 교역도 활발했다”고 말했다.
참고로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는 150t의 카라크선(carrack 船)이다.

이외에도 임석규 조계종 연구원은 발해의 토기와 자기가 고구려의 것으로부터 시작해 당의 영향을 받았음을 규명했고, 전현실 박사는 발해의 주거문화가 고구려의 온돌 형식을 발전시킨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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