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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27, 2011

람세스 2세는 정력왕

아프리카대륙에서 일부다처의 뿌리는 고대 이집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67년 동안 왕좌에 군림했던 고대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2세(BC 1290~1224)는 공식적으로 8명의 왕비와 수백명의 궁녀를 거느렸다. 52명의 아들을 포함, 무려 162명의 자녀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람세스 2세는 '정복왕' '건축왕'으로서 이름을 남겼다. 그는 선왕 때 시작된 소아시아의 하티왕국과 16년간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체결한 평화조약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성문 강화조약이다. 그는 건축왕으 로서 누비아와 소아시아 지역 곳곳에 신전과 석상을 축조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유적이 아브 심벨 대(大)신전이다. 이 신전 근처에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小)신전이 있다. 람세스 2세가 왕비마저 신격화하려 했음을 짐작케 한다.



필자는 몇 년 전 이집트 룩소르 서쪽 나일강 건너에 있는 '왕들의 계곡'에서 람세스 2세의 무덤을 살펴보았다. 현장에는 현실(玄室) 주변의 벽과 천정 등에 벽화만 덩그렇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1995년 5월 람세스 2세의 왕비와 자녀들의 무덤이 람세스 2세 왕묘 근처에서 발견됐다. 67개의 무덤으로 이뤄진 람세스 2세의 가족묘였다. 네파르타리 왕비를 비롯한 8명의 왕비와 52명의 왕자의 무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람세스 2세의 일부다처 사실이 확인됐다.



'왕들의 계곡'에는 BC 1580년부터 BC 1085년까지 고대 이집트 신왕조 시대의 왕들과 그 가족의 약 60여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계곡에 최초로 매장된 왕은 제18왕조 초기의 투테메스 1세였으며, 그로부터 람세스 2세에 이르기까지 제18-19-20 왕조의 거의 모든 왕이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람세스 2세와 투탄카멘 왕의 묘가 가장 유명하다. 투탄카멘의 무덤은 도굴 흔적이 없이 거의 완벽한 원형 그대로 발굴됐다. 고대 이집트 왕들의 신비를 벗기고 역사 고증에 크게 기여하였다. 발굴된 유품은 무려 2,000여 점이었다. 이들 유품은 람세스 2세의 유품과 함께 모두 카이로 소재 국립박물관전시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왕을 파라오(Pharaoh)라고 한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파라오가 곧 신(神)이라고 믿었다. 파라오는 전지전능의 신이며, 신성한 통치자로서 신이 부여한 질서의 수호자였다. 이집트 영토는 파라오의 소유였으며 백성들의 복지와 행복을 책임지고 있었다. 이처럼 신적 존재로 추앙받았던 역대 파라오가 여러 왕비와 궁녀를 거느렸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으리라.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영화가 있으면 굴욕이, 번영이 있으면 멸망이 뒤따르는 게 인류의 역사이다. 찬란했던 고대 이집트 문명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왕들의 계곡'에는 세월의 흐름 속에 묻힌 신화와 전설만 남겼지만 현대 과학이 발굴과 고증을 통해 파라오의 신비를 낱낱이 벗기고 있다.



'왕들의 계곡'와 조금 떨어진 곳에 람세스 2세가 개축한 룩소르 신전이 있다. 신전 앞에 람세스 2세와 왕비의 거대한 석상이 있고, 오벨리스크가 치솟아 있다. 원래 2개를 쌍으로 세웠던 오벨리스크 중 하나는 나폴레옹이 이집트 정복 전리품으로 프랑스에 가져갔다. 신전 뒤쪽 벽 한 모서리에는 후세 사람들이 람세스 2세의 일부다처를 풍자하는 리리프 벽화가 있다. 왕이 신하로부터 정력제 보약을 받고 있는 장면이었다. 왕의 바지가 벗겨진 채 성기가 돌기한 모양을 부각한 것이었다.



유종현〈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 africajr@hanafos.com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6504&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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