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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November 29, 2011

백제와 전라도

수천년 전 고조선 시대 것으로 발견되는 우리나라의 고인돌의 분포를 보자면
전 국 고인돌의 80%가 전라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수있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적인 유적지) 고인돌은 당시 그 지방 세력들의 강한 힘과 함께 지역중에 많은 인구가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해서 알 수 있다. 몇몇 편견론자들이 지역을 나누어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바쁘지만 자신들의 핏줄이 과연 전라도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것일까 하는것도 한번쯤 생각해보며, 잠시 편견을 버리기 바란다.
백제는 원래 북방계 부여족이 남쪽 한강지역을 관할하면서 500년 역사의 한양백제로 출발하였다.
백 제는 삼국시대 마한,변한,진한 지역에 대해 공격을 가하였으며, 지금의 충청,전라 지역을 포함한 마한지역은 변한,진한,탐라 보다 우수한 국가였다. 마한의 수도는 어디었을까...학계에서는 전북 익산지역을 들고 있다. 익산지역은 마한 시대의 유물이 가장 많이 나왔던 지역이며, 고서를 유추해봤을때 익산이 그 중심 도시 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당시 시대를 보면 마한이 진한과변한을 다스리려 하고 간섭하는 도중 기습으로 마한을 정복하고
충청과 전라도 지역을 차지한다. 이로써 백제는 지금의 서쪽지역을 모두 차지하게 됬고 한양백제가 500년의 역사로 가장 길었지만 우리는 충청도에 수도가 있던 백제를 그리고 전주에 수도가 있던 후백제를 백제국으로 알고 있다.
근 초고왕이 마한을 치고 그 지역을 백제땅을 만들때 지금의 전라도 지역에 큰 성곽을 쌓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북쪽으로의 진출을 꽤 하고 있엇기 때문이지 전라도 지역을 무시해서 도 아니었다. 백제는 후기 수도를 지금의 전북익산과 전주 지역 일대로 정하려 하였다. 지금 전주 주변과 익산 주변을 가보면 백제의 유물이 굉장히 많고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 수천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것이며, 유년시절을 전북지역에서 자란 백제의 몇몇 왕들은 호남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백제 문화는 화려하고 섬세하고 월등히 뛰어나서 중국과 일본에 그 문화를 전하였다.
신라문화가 소박하고 여성스럽다고 말하지만.
통 일신라 문화가 화려했던것은 백제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서 였고 일본 문화또한 백제문화의 영향이 가장 컷고 일본 천황의 핏줄도 백제계이며 일본에는 아직도 백제신을 모시는 신사와 백제계의 성을 가진 일본인이 가장 많고 백제지명의 도시들이 많이 남아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신의와 수치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배신을 악을 알앗다. 이들은 수치심에는 활복까지 할 정도의 사무라이 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사무라이 정신은 백제의 싸울아비 정신이 바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화 랑도 정신은 10대 청소년들을 전장의 맨 앞에 나가 싸우게 했다.. 이걸 신라의 기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 어딜가도 전투의 맨 선봉에서 그나라의 왕이나 아니면 그 휘하의 장군들이 선봉에서 모범을 보이며 최후를 맞이하지 어린아이들을 선봉에 세워 희생을 강요하진 않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백제라고 하면 전라도를 생각한다. 왜 이렇게 됬을까? 백제 관련 영화를 제작하면 꼭 백제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있다.
아 무리 백제를 북방계가 세우고 한양이 중심이 되거나 부여,공주가 중심지가 되었지만 결국 그 백제의 인물들과 후손들이 전주에서 후백제의 개국공신이 되고 그 후손들이 백제문화를 이어왔고 그 후손들이 지금 전라도를 중심으로 살기 있기 때문이다...
지 역편견론자들은 예술과 문화 스포츠 그리고 창조력에서 앞어 왔던 백제와 전라도는 별게라는 말을 퍼뜨리고 다닌다. 백제의 정신이 공유되는 충청과 전라도 지역을 서로 이간질 시키기 바빴다.백제의 뿌리가 전라도는 아니지만 궂이 백제와 전라도를 분리시키려는 이유는 뭘까... 그 당시 에서 부터 현재까지 전라도 지역에 집중된 전통 예술 문화들에 대한 지식을 쌓고 이해를 하길 바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호서지방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충청도와 제주도와 전라도는
오랜 역사동안 한 식구와도 같았고 현재의 충청도 땅 일부가 약 30여년 전만 해도 전라도 땅이었고 제주도 땅 역시 과거 전라도 땅이었던 것을 아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주 서는 마한인은 키가 크고 거칠다고 기록 한다. 몸에는 문신을 하고 소년들이 성인이 될때는 등가죽에 줄을 꾀어 끌고 다닌다고 한다. 마한인은 신명이 있다고 한다. 수릿날이면 큰 나무를 세우고 남녀노소가 모여 음주가무를 하며 날밤을 세운 다고 했다. 잘 생기고 용감 하고 신명을 즐길줄 알던 사람들이 마한인이다. 전라도 충청도 지역에 지금도 번성한 장승과 솟대 문화는 그 때를 추억 한다. .

호 남고립화 정책 호남대 비호남 정책 ...이런것들은 옛것이다. 더이상 그 쓰레기같은 정치문화를 용납해서는 안된다. 더이상 나라의 분열을 가만히 두고봐서도 안된다. 더이상 백제혈통의 우수성을 물려받은 지역사람들의 기를 죽이고 차별하려는 짓을 해서는 절대로 이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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