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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24, 2011

세종대왕은 앉아있는 종합병원이었다


“주상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지만 몸이 비중하지 않소? 마땅히 때때로 나와 놀면서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主上不喜游田 然肌膚肥重 須當以時出遊節宣)”(<세종실록> ‘즉위년조’)

1418년 10월, 태종이 막 즉위한 아들 세종에게 한마디 충고를 던진다. 임금의 몸이 뚱뚱하니 운동으로 살 좀 빼라는 얘기였다. 다 알다시피 세종은 ‘끔찍한’ 책벌레였다.

■책을 1100번 읽은 세종 = “(세종은) 책을 100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좌전(左傳)>과 <초사(楚辭)> 같은 책들은 200번 읽었다. 몸이 아파도 마찬가지였다. 보다못한 아버지(태종)가 환관을 시켜 책을 다 거두어갔다. 그런데 <구소수간(歐蘇手簡·구양수와 소식의 편지모음집)> 한 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다. 세종은 이 책을 1100번이나 읽었다.”(<연려실기술>)

세종은 재위 32년동안 날마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하루 평균 20시간씩 격무에 시달렸다. 여기에 육식을 어지간히 즐겼다. 태종이 “주상이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하는데…”라고 걱정하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다.

세종은 지금으로 치면 ‘앉아있는 종합병원’이었다. ‘걸어다니는~’이 아니라 ‘앉아있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가 있다. 움직이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세종은 평생 당뇨병과 함께, 풍질과 부종, 임질, 수전증 같은 병을 안고 살았다. 특히 35살 이후에는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 물을 한 동이 넘게 마실 정도였다. 당뇨 후유증 때문에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부종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 누울 수도 없었다. 여기에 임질에 걸려 정사를 돌보지 못할 정도였다니….(한국학중앙연구원의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돌베개)에서)

■격무에 시달린 지도자 = 비단 세종 뿐인가. 조선의 역대 임금의 평균수명은 47세에 그쳤다. 27명 가운데 병없이 건강했던 왕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태조·정종·태종 등은 뇌출혈(중풍), 세종·숙종은 당뇨병, 선조·영조는 폐렴, 문종·성종·순조는 패혈증(종기), 연산군·현종·경종은 전염병 등으로 승하했다.(김정선의 박사논문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에서)

영양섭취는 지나친 반면, 몸은 움직이지 않고…. 여기에 하기야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할 임금이었으니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엄청났을까. 오죽했으면 숙종은 “노심초사 때문에 수염이 하얗게 셀 정도였다”지 않는가. 더욱이 그는 “성격이 급해 닥친 사무를 버려두지 못하며, 식사도 때를 어겨 노췌하고 현기증이 있다”고도 했다. 전형적인 ‘일중독 환자’였던 것이다. 세종과 숙종이 아니더라도 임금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밤 11시까지 경연(經筵)에, 정무에 시달렸다. ‘임금이 곧 태양’이니, 임금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나 어쩐다나.

그런데도 조선이 건국하자 마자 신료들은 “국왕이 게으르다”며 질타했단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신하들도 어지간히 임금의 속을 썩였다.

■왕의 스트레스를 폭발시킨 신하들 = 광해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619년 7월, 당시 요동을 점령하면서 욱일승천하던 청나라가 편지를 보냈다.

“명나라와 관계를 끊고 우리(청)와 맹약을 맺자”는 편지였다. 광해군은 “이 편지를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명했다. 광해군은 ‘지는’ 명나라와 ‘뜨는’ 청나라 사이에서 적절한 등거리 외교를 펼치려 했다. 반면 신하들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내세웠다. 3개월이나 ‘몽니’를 부리며 차일피일 미뤘다.

광해군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면서 당시 우의정인 조정(1551~1629)에게 “당신이 처리하라”고 했다. 그러자 조정은 “제가 왜 책임지냐”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회피했다. 광해군이 한탄했다.

“당신이 맡지 않는다는데, 어느 누가 맡겠는가. 나 혼자 고민하다 병이 됐으니 나라 일이 한심하다. 생각하면 가슴이 섬짓하다.(思之膽汗)”

광해군의 화는 부하가 말을 듣지 않아 생긴 전형적인 ‘업무 스트레스’였다. 이밖에 태종은 풍질(류머티즘성 관절염)로, 선조는 오랜 전란이 안겨준 편두통 때문에 고생했단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는 ‘고독하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한몸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평가’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쉼없이 공부하고 백성을 어루만졌던 세종을 보라. 당대에는 ‘해동(海東)의 요순(堯舜)’으로, 후대에는 ‘만고의 성군’으로 추앙받은….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112211507081&code=960100&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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