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Friday, February 15, 2013

왜(倭)는 단군조선 때 마한(馬汗)에게 복속하였고

4. 馬韓의 種族
 
 1). 한(韓)
 
한(韓)은 한반도 토착민(土着民)이다.
B.C 194년에 평안도 지방에 살고 있던 한(韓) 무리는 기자조선(箕子朝鮮) 유민(遺民)들에게 일시 공파(攻破)당하였으나, 곧 기자조선 유민들을 한수(漢水) 이남으로 쫓아버리고 다시 나라를 세웠다. 사서에는 이 나라 이름이 낙랑(樂浪)으로 적혀 있다.
그 후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주하는 무리가 많아지자 한수(漢水) 이북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 지방에 살고 있던 한(韓) 무리는 만주에서 이주한 예(濊) 무리에 정복되었다. 그리고 한수 이남에 살고 있던 한(韓) 무리도 한수 이남으로 남하한 기자조선 유민 또는 만주 눈수(嫩水), 송화강(松花江) 등지에서 이주한 무리에 정복되었다.
이 한(韓) 무리도 만주에서 이주한 예(濊) 무리처럼 해님과 달님을 숭배하였다. 
한 (韓)의 신앙(信仰)을 보면 해, 달, 별 등 천신(天神) 외에 삼신(三神), 토지신(土地神), 산신(山神) 등을 섬겼고, 묘자리 쓸 때, 고기잡이 나갈 때, 길을 떠날 때 날자를 골라 제를 올리는 등 잡신(雜神)도 숭배하였다. 
 
2). 왜(倭)
 
왜(倭)는 서.남해 섬, 대마도, 일본열도 등지에 살던 토착민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고 54국이 있었다. 그 나라의 북쪽에는 낙랑이 있었고, 남쪽은 왜(倭)와 접했다. 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後漢書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었다. 변진의 남쪽은 역시 왜(倭)와 접하였다. 弁辰在辰韓之南其南亦與倭接」後漢書 
「또 한 주호(州胡)가 있는데,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있는 큰 섬에 사는 사람들은 키가 작고, 언어는 한(韓)과 같지 않으며, 선비족처럼 머리를 깎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으며,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고, 상의는 입지만 하의는 입지 않아 거의 벗은 것과 같았다. 배를 타고 왕래하며, 韓.中과 교역을 한다. 又有州胡 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 其人差短小 言語不與韓同 皆髡頭如鮮卑 但衣韋  好養牛及猪 其衣有上無下 略如裸勢 乘船往來 市買韓中.」 三國志
 
서. 남해 섬에 살던 토착민인 왜(倭)는 가축사육(家畜飼育), 어업(漁業), 약탈(掠奪) 등을 생업으로 하였기 때문에 생업상 무력(武力)을 사용할 기회가 많아 강한 무력을 보유(保有)하고 있었다. 이 왜(倭)는 단군조선 때 마한(馬汗)에게 복속하였고, 단군조선이 멸망한 후에는 직산(稷山:洪城?) 금마(金馬) 마한(馬韓), 익산(益山) 금마(金馬) 마한(馬韓), 구태백제(仇台百濟) 순서로 복속하였다.
마한이나 구태백제는 신라 공격 시 무력이 강한 왜(倭)를 군사로 사용하였다. 그 때문에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왜(倭)를 군사로 사용한 마한이나 구태백제 군사가 왜(倭)로 적혀 있다.
 
3). 예(濊)
 
삼국지 예전에 적혀 있는 예(濊)는 넓은 의미로는 부여(夫餘) 무리를 가리키나, 좁은 의미로는 부여(夫餘) 무리 중 농어업족을 가리킨다. 
고대에 만주에 살던 부여(夫餘) 무리는 단군조선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소규모로 한반도, 대마도, 일본열도로 이주하다가 B.C 194년경부터는 본격적으로 한반도, 대마도,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토착민(土着民)인 한(韓), 왜(倭)를 정복하고 수십개의 소국을 세웠다.





 http://home.megapass.co.kr/~hsg1000/a70d.htm





No comments:

Post a Comment

Blog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