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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rch 10, 2013

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흑인들을 노예로 썼을까 ?

C.S. Forester의 Hornblower의 마지막 편은, 혼블로워가 마침내 제독이 되어 1820년대에 자메이카의 해군 사령관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그린 옴니버스 스타일입니다.  물론 평화 시기였지요.







(혼블로워는 이때쯤은 대머리가 슬슬 벗겨지는 것이 원작 설명인데...)



 그 일화 중 하나가, 당시 막 불법화되었던 노예무역을 영국 해군이 단속하는 내용입니다.  즉, 아직 노예 무역이 불법화되지 않았던 스페인령 카리브해 섬으로 가는 스페인 노예선을 붙잡는 일이습니다.  Forester야 영국인이니까, 당연히 당시 세계의 경찰이자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영국 해군의 모습을 부각시키고자 했지만, 사실 영국 해군이야말로 세계 각지에서 온갖 부도덕한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이때 영국이 해군을 동원해서 노예 무역을 금지했던 것은, 스페인 세력을 중남미에서 축출하려고 했던 것이 강한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노예 무역하니까, 생각나는 일입니다만, 왜 미국에서는 중국인이나 필리핀인을 노예로 잡아다 미국에 데려와서 쓰지 않았을까요 ?  그런다고 당시 뭐 청나라 팔기군이 바다를 건너 쳐들어오는 것도 아니었을텐데요.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도 결국은 노예로 쓰지 못했습니다.  초기에는, 특히 남미에서는 인디오를 노예로 쓰기도 했지만, 결국은 남미에서도 흑인 노예가 곧 인디오 노예들을 밀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류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노예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원시 사회에는 그런 거 없었지만 말입니다.  오죽하면 성서에서도 노예 제도를 부정하지 않았쟎습니까 ?  하나님이나 예수님도 노예에 대해 언급을 하시면서도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는 말씀은 한마디로 안하셨던 것으로 보아, 노예 제도 자체는 인정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흑인만 노예로 쓴 것도 아니고, 같은 민족도 노예로 많이 썼으며, 또 이집트의 사라센 왕조에서는 슬라브인들이나 아르메니아인들을 잡아다 마멜루크라는 노예 군단을 만들기도 했었지요.







(노예치고는 간지난다...)



그런데 왜 근대에 들어서서는 노예 = 흑인이라는 공식이 성립했을까요 ?



이유는 몇가지가 있겠습니다.  먼저, 북미 인디언은 자존심만 세고 체력은 약해서 노예로서는 적절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백인들이 옮겨온 천연두같은 병에 너무 취약했다고 하지요.  노예는 경제 도구입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더 경쟁력있는 대체물이 나오면, 그 경제 도구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흑인은 자존심도 없고 체력만 강했던 것일까요 ?  자존심 부분은 모르겠습니다만, 흑인이 체력이 강했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노예로 아메리카 및 카리브 제도에 끌려왔던 흑인들에게서는 그런 점이 더 확실했습니다.  즉, 흑인도 다 같은 흑인이 아니라는 거지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면 당시 노예선의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1. 18세기말 19세기초에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미국이나 카리브해의 사탕수수밭까지 가는데 약 1달 정도 걸렸답니다..  당시 일반 범선보다는 좀 빠른 편입니다.  당시 노예선은 차 운반선(tea clipper) 다음으로 빠른 쾌속선을 썼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시겠지요 ? 빨리 가야 인간 화물의 생존률이 높고, 그래야 돈을 더 많이 벌쟎습니까 ?



2. 흑인노예들에게는 매일 쌀과 물을 먹였는데, 이는 쌀을 먹이는 것이 열악한 상황에서의 인간 생명 유지에 가장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마 현미였겠지요 ?  단백질은 조금 부족해도, 비타민이나 영양분이 골고루 있으니까요.  여기서 다시 쌀의 우수성이 반증되는군요.



3. 화물은 당연히 좁은 공간에 꽉꽉 채워넣고 배를 띄워야 돈벌이가 되니까, 정말 글자그대로 흑인들을 인간 '화물'로서 꽉꽉 채워넣었다고 합니다.  감옥 같은 형태도 아니고, 일종의 선반같은 형태에 쇠고랑을 채워 첩첩이 쌓아두었다네요.  그 열기와 악취, 답답함을 생각해보십시요.  저는 아마 첫날 답답해서 죽었을 것 같습니다.













4. 화장실은 어떻게 갔냐고요 ?  이거 웃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화장실 가는 시간 없었다네요.  그냥 비스듬히 누운 자리에서...  그도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게, 인간은 하루에 약 8~10회 정도 화장실에 가쟎습니까 ?  그 많은 노예들을 그때그때 적은 숫자의 선원들로서 통제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누운 자리에서...  사실 이건 19세기 초까지도 노를 젓던 갤리선의 노예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갤리선이 스윽하고 지나가는 자리에는 엄청난 악취가 났다는군요.  사실 갤리선의 노예들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노를 저으니까, 차라리 죽는게 낫거든요.  제가 노예라도 화장실 가기 위해 자리에서 풀려나면 즉각 바다에 뛰어들든가 감시원을 들이받든가 할 것 같아요.



이런 악조건을 1달 이상 버텨내고 살아남은 흑인들은 정말 보통 흑인이 아닌 겁니다. 애초에 배에 실을 때도, 여행에서 버틸 만한, 그러니까 튼튼한 애들만 골라 실었는데, 이걸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정말 대단히 신체 조건이 좋은 사람들인 거지요.  그러니까 요즘 미국 흑인들이 운동 신경이 좋은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씨가 다르거든요.



여담입니다만, 인도인들은 올림픽은 커녕 아시안 게임에서도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몇억 인구가 부끄러울 노릇이지요.  그러다가 어떤 인도 정부 인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답니다.  인도는 워낙 넓은 땅인지라, 인도에도 흑인들이 꽤 있었거든요.  미국처럼 그들을 집중 육성해서, 스포츠 엘리트로 키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도 흑인들과 미국 흑인들은 뭔가 씨가 달랐는지, 인도 흑인들은 별로 운동 신경이 좋지 못해 그 프로젝트는 실패했다고 합니다.









(유전자 경쟁 승리의 슬램 ~ 덩크 !!!)



그러니까 결론은, 노예 시장에서 흑인의 경쟁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다른 인종의 노예는 흑인에 밀려 사라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이게 비극입니까 희극입니까 ?



중국인이나 인도인들은 왜 노예로 팔려가지 않았을까요 ?  인구 수로 따지면 정말 무한한 공급원이 있었는데요.  이들의 경우는 노예로 쓸 수가 없었던 이유가 간단합니다.  당시 인도나 중국 사회에는 '노예'를 사고 파는 시장이 없었거나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도 정부나 중국 정부는 대량으로 자국인을 유럽인들에게 내다 파는 행위를 주도하거나 수수방관할 정도로 비도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파는 사람이 있어야 사올 것 아니겠습니까 ?  게다가 아메리카 대륙까지 가려면 건너야 하는 태평양과 인도양은 너무 넓어서, '상품'의 가치가 너무 많이 떨어졌고 물류비가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 즈음 되면 종보다는 머슴이 주종을 이루었지요.   머슴은 새경이라고 저임금이긴하지만 임금 노동자이지 이리저리 매매 대상이 되는 상품은 아니지요.





(옛 이야기 보면 꼭 등빨 좋은 머슴과 달아나는 청상과부 이야기 나오쟎습니까 ?)







(게다가 우리나라의 '자칭 머슴'은 주인 알기를 발바닥 때처럼 아는 것이 전통입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영국이나 스페인, 미국의 노예 무역선에 백인 선원들이 몇명이나 탔겠습니까 ?  기껏해야 100명 미만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아무리 총과 대포로 무장한다고 해도, 중국인과 인도인 수만명이 득실거리는 해안가에 상륙하여 단시간 내에 중국인과 인도인 수백명을, 그것도 건강하고 상품성있는 노예들을 잡아올 수 있었다고 보십니까 ?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도 노예로 활발히 유통되던 시절이 있긴 했습니다.  바로 임진왜란 때였습니다.  당시 왜군의 주요 약탈품은 사기 그릇과 사람이었다면서요 ?  그때는 정말 왜군이 '군대 단위'로 몰려와서 조직적으로 사람들을 잡아다가 동남아 시장에 내다 팔았지요.  그래서 그 중 몇명은 이탈리아까지 흘러들어 갔다지요 ?



당시 흑인 노예들도 백인들이 아프리카 해안에서 납치해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사오는 것이었습니다.  즉, 파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방영되었습니다만, '뿌리'라고, 미국 흑인 노예의 선조들의 역사를 그린 '재연 다큐멘터리'가 있었습니다.  쿤타킨테가 나오는 그거요.  거기서 1대 노예 쿤타킨테를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납치한 것은, 사실 흑인들이었습니다.  대개는 서아프리카 해안 지방의 흑인 권력자들이 다른 흑인 포로들을 유럽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넘겼다고 합니다.  서아프리카의 고대 왕국 (지금도 있는 나라입니다만) 말리의 주요 수출품은 금과 노예였다고 합니다.  참 슬픈 역사지요 ?





(13세기 예멘의 노예 시장.... 누가 이들을 팔았는가 ?)



더욱 슬픈 것은, 그런 사실들을 들먹이며, 유럽인들은 '사간 우리도 나쁘지만 판 니들이 더 나빠'라고 책임 전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가 1910년 일본에 합병된 것이, 일본의 강압 때문이 아니라, 이완용 등 당시 조선의 권력층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라고 일본 우익들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완용이 그것을 원했고, 또 형식적으로는 조선의 요청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맞긴 하니까요.  제가 중딩 때인가 고딩 때인가 어떤 독일 애하고 펜팔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그런 것이 유행이었지요.)  그때 어쩌다 팔레스타인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독일 애가 설명하기로는 '아랍인 부자들이 이스라엘 땅을 유태인들에게 돈받고 팔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 땅 판 아랍 부자들에게 항의를 해야 한다'라고 설명하더군요.  아마 형식적으로는 그것이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내용도 그럴까요 ?



이래저래 슬픕니다.


http://blog.daum.net/nasica/686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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