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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November 6, 2013

[그 섬, 파고다]3. 2000원 국밥에 반주 한잔, 인생을 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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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을 사흘 앞둔 4일 서울 종로구의 파고다 공원 주변 음식점 '부자촌'에서 한 할아버지가 3000원짜리 콩나물국밥을 드신다. 기자의 표정을 보고는 "거참, 그런 안쓰런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하고 꾸짖어 주신다. 그러더니 하시는 말씀 "정말 맛있어, 기자도 한번 먹어볼래?" 백소아 기자 sharp2046@

빅시리즈③ 세상에서 가장 싸지만 푸짐한 '낙원동 먹자골목'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순두부찌개 2000원. 콩나물해장국 2000원. 돼지국밥 3000원.

대한민국에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런 가게가 즐비한 곳이 바로 이곳 낙원동입니다. 일명 '먹자골목'으로 통하는 종로 파고다공원 뒤편이죠. 가게마다 1980년대 후반쯤에 멈춘 듯한 정경은 낯설면서도 낯이 익습니다. 이곳에 오면 저렴한 가격표에 한 번 놀라고,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할아버지들에 또 한 번 놀랍니다. 

이곳에서 3년째 국밥과 해장국을 2000원에 파는 한 식당주인은 "어르신들 상대로 장사하는데 비싸게 받을 순 없지 않느냐"며 "그나마 가격 부담이 없어서 단골손님은 꽤 있다"고 전했습니다. "월세랑 인건비 빼면 남는 게 뭐 있나. 그분들 주머니 사정 뻔히 아는데. 찾아주는 어르신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장사하는 거지" 식당 주인의 말에 사람 냄새가 가득 배어있습니다.

근처 다른 식당들도 한 끼 식사가 3000원이 넘는 곳을 찾기 힘듭니다. 점심시간 식당 안에는 플라스틱 테이블마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할아버지들이 모여 밥 한 그릇에 반주를 곁들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무리의 동년배들과 밥을 먹던 박정수(73) 할아버지는 "암으로 고생하던 마누라가 4년 전에 세상을 뜨고 나니 막막하더라고. 한동안은 집에서 멍하니 있는 게 전부였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취미로 바둑을 해보려고 종로에 오기 시작했어. 여기서 싸게 이발도 하고 사람들이랑 같이 밥 먹으러 자주 들러"라고 입을 뗍니다. 학교 동창이나 동향 사람들끼리 모이는 장소로도 낙원동이 제격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고 보니 인근 식당 간판이 '강원도집', '전주집', '충청도집' 등으로 다들 지역명을 쓰면서 할아버지들의 향수를 달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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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홀로 국밥을 먹던 장모(78) 할아버지는 주인이 유리잔 가득 담아준 '잔술'을 두툼한 손으로 쥐고 한 모금씩 아껴 마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혼자 한 병 시킬 순 없잖여. 양도 이게 딱 맞지"라는군요. 이렇게 소주나 막걸리를 우리가 흔하게 보는 맥주컵 하나에 가득 담아 단돈 1000원에 파는 잔술도 낙원동에서 볼 수 있는 '명물'입니다.

명실공히 낙원동 대표 장수 식당인 '유진식당'은 할아버지들의 단골메뉴인 설렁탕, 돼지국밥을 수년째 3000원에 묶어 두고 있습니다. 3대째 이어 온 이 집은 1960년대 후반 인사동에서 국밥장사를 하던 할머니부터 아버지에 이어 지금은 사남매 중 삼남매가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지난 8월 아버지 문용춘(87)씨가 세상을 떴을 때도 삼남매는 장례를 치르기 무섭게 다음 날 식당 문을 열었습니다. 막내 종현(43)씨는 "오랜만에 들른 단골손님들이 아버지 소식을 듣고 내 일처럼 슬퍼하는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식당 벽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아버지 사진을 걸어 놓고 손님들이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게 했습니다. 종현씨는 "단골손님이던 아저씨가 아들을 데리고 오곤 했었는데, 이젠 세월이 흘러 손자까지 같이 오더라"고 전합니다. 

그는 "어르신들이 '아들아', '막내야'라고 부르며 친아들처럼 살갑게 대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라며 "자주 오시던 어르신의 발길이 오랫동안 끊기면 '아, 돌아가셨구나'하고 짐작하곤 슬퍼질 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막내아들'의 마음을 아시는지, 돼지국밥에 반주로 막걸리 한 잔을 걸쳐 얼굴이 발그레해진 한 할아버지가 종현씨를 말없이 꼭 안아주고 식당을 나섰습니다.

'유진식당' 위쪽으로 난 좁은 길을 몇 발자국 걸으면 15년 전통의 '고향집'이 나옵니다. 순두부찌개, 콩나물해장국, 선지해장국 한 그릇 가격이 이곳에선 '무려' 2000원입니다. 할아버지들 틈을 비집고 앉아 순두부찌개를 맛봤습니다. 맑은 국물에 순두부가 두 덩이, 그 위에 계란을 톡 깨뜨려 풀고 김 몇 조각을 찢어 올린 게 전부지만 담백하니 먹을 만합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배추김치와 함께 뚝딱 한 끼를 해치웠습니다.

그때쯤 혼자 식당 안에 들어선 한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국밥을 떠먹던 백발의 할아버지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그를 한 번 쓱 올려다보더니 개의치 않고 식사를 이어갑니다. 가끔은 이러다 서로 말동무가 되기도 한답니다. 혼자 밥을 먹는 노인들이 많은 낙원동 식당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입니다.

손님과 주인은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이 없습니다. 저녁 시간을 넘겨 식당에 들른 할아버지에게 주인은 "오늘은 늦게 나오셨네"라며 미소를 주고받습니다. 좀 전에 밥을 먹고 얼큰하게 취해 돌아온 할아버지가 문 앞에서 "여어~"하며 인사를 건네자 그는 "조금만 드셔. 많이 드시면 안 돼"하며 어깨를 다독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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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불을 밝힌 선술집 포장마차에선 주인과 손님들이 일행처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왁자지껄합니다. 이곳의 안주인 김치찜, 생선구이가 철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나면 어르신들의 수다도 정점에 다다릅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저녁이 되자 일대는 정감과 활기가 넘쳐 흐릅니다. 유난히 이곳엔 동네이름에서 따온 '낙원'이라는 이름의 식당 간판이 많은데 넉넉하지는 않아도 어르신들을 정답게 품어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어쩐지 '낙원'의 모습과 닮아 보입니다.

◆할아버지들이 꼽은 낙원동 맛집 

"할아버지, 점심 드시러 자주 가는 집 어디에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파고다 나들이 10여년 경력의 '베테랑' 할아버지들의 입이 분주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이 일대에서 먹은 점심만 수백 그릇이 넘을 테니 그럴만합니다.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아 나서는 건 어르신들이 누리는 일상의 즐거움이자 한편으론 숙제이기도 합니다. 말로 설명해주는 건 부족했는지 소매를 끌고 손수 이곳저곳 데려다 주십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누비고 나니 어르신들의 '맛집'이라고 할 만한 10여곳이 추려지네요. 그 중 몇 군데를 소개합니다. 할아버지들만큼이나 나이를 먹어 오랜 기간 손때가 묻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수련집·부산집

낙원동 파고다 오피스텔 맞은편,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수련집'과 '부산집'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식당의 간격은 50m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수련집'과 '부산집'의 대표 메뉴는 각각 가정집 백반과 동태백반. 가격은 3000원으로 똑같다. 가게 이름만큼이나 소박하면서 정겨운 분위기를 지닌 두 식당의 음식은 '집밥'과 가장 가깝다는 점이 매력이다. '수련집'은 푸짐한 밥에 국, 여덟 가지 반찬이 소담하게 차려 나오고, '부산집'은 큼지막한 동태살과 얼큰한 국물이 밥맛을 돋운다. 미로 같은 길에 숨어 있는 두 식당은 이제 젊은이들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 

부자촌 

그동안 밀가루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파고다 공원 동문 근처에 있는 '부자촌'은 2000원대의 콩국수·냉면·짜장면 등 면요리의 가격을 10년간 단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다. '부자촌'을 운영하는 전영길(66) 할아버지는 "단돈 500원도 크게 느끼는 손님들 때문에 차마 올릴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 시내에서 한 끼 가격은 어르신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지만 여기선 그 돈이면 친구들한테 한 턱 거하게 낼 수도 있다"며 자랑을 했다. 요즘 전 할아버지는 손님들이 행여 추위를 타진 않을까 싶어 방한 작업에 여념이 없다. '부자촌'은 30여개가 넘는 다양한 식사와 안주가 특징. 최근에는 찜닭이나 전골 등 안주에 술 2병을 곁들인 1만원짜리 세트메뉴를 출시해 손님 모으기에 한창이다. 

팔도 지명 다 모인 순대국밥집

낙원상가 옆 순대국밥 골목에는 '강원도집', '광주집', '전주집', '충청도집', '호남집' 등 전국 팔도의 지명이 다 있다. 처음 이곳에 국밥집 문을 열었던 주인들의 고향으로, 벌써 40년 전 이야기다. 지금은 새 주인들이 가게를 인수해 장사를 하고 있다. 7년째 '전주집'만 고집한다는 이영옥(66) 할아버지는 이날도 점심으로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비웠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주인 바뀌는 것도 다 봐왔지. 그래도 인연이라는 게 있으니까 난 여기만 와" 했다. 골목 초입에서 '허리우드식당'을 운영하는 배영애(67)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30여년간 매점을 운영하다가 1960년대 후반 극장이 생기고 나서 업종을 변경했다. 가게에는 몇 년 전 TV방송에 출연했던 그의 사진이 상장처럼 붙어있다. 낙원동에서 청춘을 보냈다는 할머니의 얼굴은 그때보다 주름이 꽤 늘어 있었다.

관련기사 : [그 섬, 파고다]1. 지금의 나는, 미래의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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