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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November 30, 2013

中 시안서 백제 유민묘 묘지석 발견

2011년 10월 31일 (월) 10:26:01이사랑 기자  dracea@naver.com

  
 백제 묘지석과 유사한 당나라 때의 묘지명
지난해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근교에서 백제 유민인 예(禰) 씨 일족의 묘와 묘지석(墓誌石)이 발견됐다고 게가자와 야스노리(氣賀澤保規) 메이지(明治) 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해 아사히(朝日) 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게가자와 교수에 따르면 중국 측의 조사 결과 지난해 발견된 묘에서 나온 묘지석은 백제 군인 예군(禰軍)의 동생 등 2명의 것이다.
678년 2월에 숨져 같은 해 10월에 매장된 예군의 묘지석은 미리 도굴된 듯 발견되지 않았으나 묘지석 탁본은 고미술품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중국 지린(吉林) 대학 고적(古籍)연구소의 왕롄룽(王連龍) 씨는 중국 학술잡지 ‘사회과학전선 7월호에 예군 묘지석의 탁본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예군의 묘지석 탁본에는 백제-왜 연합군과 신라-당 연합군이 맞붙은 663년 백촌강(白村江) 전투 직후의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에 ‘일본여초(日本餘噍), 거부상이포주(據扶桑以逋誅)'라는 기술이 있다. 살아남은 일본은 부상(일본의 별칭)에 틀어박혀 징벌을 피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묘지석 탁본에는 예군이 당시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에 파견됐다고 적혀 있다.
일본 연구자들은 678년에 만들어진 묘지석에 왜(倭) 대신 일본이라는 국호가 쓰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금까지는 일본이라는 국호가 701년 다이호(大寶)율령에서 가장 먼저 사용된 줄 알았는데 7세기 말에 이미 일본이라는 명칭이 쓰였다는 것이다.
스즈키 야스타미(鈴木靖民) 고쿠가쿠인(國學院) 대학 교수는 “일본이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는 등 동아시아의 정치 상황이 격변하는 와중에 왜국 대신 일본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다이호율령에서 이를 명문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예씨 일족은 백제 웅진(공주)을 거점으로 대대로 좌평직을 세습하면서 백제 지배층에 영향력을 행사하다 백제 말기 당에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일원인 예식진(禰寔進)은 660년 신라-당 연합군의 백제 정벌 전쟁 때 웅진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포로로 잡아 연합군에 바쳤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당은 이후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예군은 웅진도독부에서 사마(司馬)직을 지냈다.
시안은 당나라의 수도였다. 이곳에서는 2006년에도 예식진의 묘지석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사랑기자 dracea@naver.com


http://ren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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