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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December 23, 2013

일본은 풍요로웠다

미소라멘을 먹고 에도를 얘기하다

유지군  2013.12.24 01:59211.116.**.**

 

심야에 라멘을 먹는 건 부담이긴 하나, 저녁을 일찍 먹어서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심야에 먹는 맛은 여간 아니다.^^ 하여 깊어가는 심야지만 풍성한 '먹거리' 얘기 하나 해볼까 한다. 에도시대 때의 먹거리다.

 

지금도 세계최대, 최고의 도시이지만 에도는 즉 현재의 도쿄는 바쿠후 때 벌써 인구가 백만이 넘는 도시였다.

물론 도쿠가와가 이곳에 터를 잡기 이전에는 민중들에게 별반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 교토는 물론이거니와 오사카에도 견줄 수가 없었다. 사료에 에도라는 명칭이 처음 나온 건 1180년(지쇼 4년)이었다. '에도타로 시게나가'라는 호족의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도쿠가와가 1590년에 에도성으로 입성하고 13년의 와신상담 끝에 마침내 '에도시대'를 열게 된 셈이다.

 

각설하고, 도쿠가와는 에도를 중심으로 해서 열도의 도로를 정비하였는데,이는 다이묘들의 참근교대(參勤交代)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그 결과 지방간의 교류를 촉진시켰고 그 중심에 에도를 놓음으로써 번영의 토대가 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 역시 종류가 다양하였고 맛 또한 일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백만의 도시민을 먹여살리고 맛을 즐기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즉 풍성했다는 얘기다.그 중에 하나, 에도 서민들의 애환이 함께 서린 '야타이'(포장마차)의 그 넉넉한 세계로 들어가 보자.

 

가에이 6년인 1853년에 발간된 작가 '기타가와 모리사다'의 수필 <모리사다만코>에는 당시의 정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에도에는 포장마차가 무척 많으며 자리잡고 장사하던 곳에서 벌이가 시원찮으면 다른곳으로 이동하여 장사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현대 도시의 포장마차 풍경같아 눈에 선하다^^ 하여 당시의 에도 시민들은 포장마차에 끼리끼리 앉아 바쿠후를 비판하기도 하고 지배계급의 무능을 성토하며 스시, 덴푸라, 장어구이 등을 즐겨 먹기도 하였다. 그 중에 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덴푸라'가 있다.

에도만에서 잡은 생선을 밀가루로 튀김옷을 만들어 입히고 튀겨내자마자 꼬치에 꽂아 무즙과 튀김간장을 찍어먹는... 덴푸라는 가히 별미였다. 크,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돈다^^ 정말 당시에도 그러했다.예컨대 당시 통속소설인 <에도 쿠이케>에 그려진 포장마차 풍경에는 개가 주인의 덴푸라를 뺏어먹는 장면도 나오는데, 주인에게 충실하기 짝이 없는 개도 덴푸라의 맛에 정신을 뺏겨 그 지경이 된다는 것이니^^ 이 맛이 어찌 일품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하여 17자의 단가 센류에 이런 구절도 나온다."덴푸라 가게에 비수리를 세워놓다"점쟁이들이 사용하는 점대인 비수리를 가게에 세워놓을 정도란다. 에도는 이렇게 활기찼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역동성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47인의 사무라이'에도 열광하고 눈물흘리고, 바쿠후의 몰락에도 새날을 꿈꿀 정도였다.

어라, 이거 어쩐다^^ 다시 출출해지는 듯하네^^ 하여 센류 하나^^

 

"뚝딱 해치운 라멘 덴푸라의 냄새로 배에 가득 차네"


http://m.dcinside.com/view.php?id=history&no=1103725&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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