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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anuary 30, 2014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기업은 백제 기업이다



백 년을 넘어서는 가업이 수만을 헤아리는 믿기 어려운 사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박사나 걸출한 경영인 등 막강한 인력과 거만의 자금을 투입해 끊임없이 최첨단 기술과 경영 기법을 개발하는 데다 정부의 각종 지원 혜택까지 받는 대기업도 아닌 소규모의 가업家業이 수백 년을 넘어 살아남은 비결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웃나라 일본의 이야기이다.
사업을 해 돈을 벌면 자식은 공무원이든, 회사든 큰 빌딩의 깨끗한 사무실로 보내고 가업은 당대로 문을 닫고 마는 우리네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 지금 대기업이든, 개인이든 백 년을 넘어선 사업체가 몇 개나 될까? 
도쿄상공회의소가 2002년 150만 개의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창업 백 년을 넘어선 회사가 1만 5,207개사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 조사에는 개인 상점이나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에 이들을 포함시키면 백 년 넘은 기업이 무려 10만 곳을 넘어설 것으로 이 분야를 연구하는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들은 추정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다. 
백 년을 넘어서는 기업이나 가업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 유럽에 가업 경력 2백 년 이상 된 회사가 가입된 ‘에노키안 협회’라는 조직이 있다. 이 이름은 365세까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에녹’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에노키안 가맹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 ‘에트리니 피렌체’라는 이탈리아의 금 세공업자로, 1369년 창립해 639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 백 년 넘은 기업은 독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십 단위에서, 많아야 백 단위의 숫자에 불과하다. 
같은 아시아에서도 중국이나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과 우리나라에서는 창업 백 년을 헤아리는 기업이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두산斗山’이 기업으로는 백 년을 넘어서고 있으나 “3대까지 내려가는 가업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백 년을 넘는 기업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만의 경우 ‘창화彰化상업은행’이 올해로 백 년을 맞는 게 고작이고, 중국도 한방약이나 중국차, 서도용구, 도자기 등 일부 분야에서 창업 백 년을 넘은 기업이 더러 있긴 하나 그 수는 극히 미미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청조淸朝 초기인 1669년에 창업하여 올해로 339년을 맞은 베이징北京 ‘동인당同仁堂’ 한약방이 세계 최대 한약 메이커로 군림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으로 환원된 홍콩에 백 년 넘은 기업이 몇 개 있으나 이들은 모두 영국계로 시작하여 나중에 현지인에게 인계된 회사다. 필리핀도 삼백수십 년 된 부동산기업인 ‘아야라상회’가 있으나 이것도 스페인계 기업이고, 말레이시아의 고무나무 농장인 ‘해리슨’과 싱가포르의 식품회사인 ‘브레이서앤드니브’가 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모두 영국계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태국이나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에도 백 년 넘은 기업이 있긴 하나 겨우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이들도 대부분 옛 식민종주국계이다. 또 하나의 아시아 대국인 인도도 역사를 자랑할 만한 기업은 3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중국 본토를 떠나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상권을 잡고 있는 이른바 화상華商 중에도 아시아 백만장자 ‘베스트 100’ 비중이 반을 넘어서고 있으나 기업 역사가 백 년을 넘긴 것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보면 백 년이 넘는 세계의 역사 깊은 기업은 대부분이 일본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추정하고 있는 일본의 10만여 개에 이르는 창업 백 년 이상의 기업 중 약 절반인 4만 5천여 개사를 제조업 부문이 차지하고 있어 이것이 바로 일본 경제의 저력이 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말로 역사 깊은 이 같은 기업을 한자로 ‘노포老鋪’로 표기하고 ‘시니세’라고 읽는다. 한자대로 ‘로우호’라는 발음이 있긴 하지만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시니세라고 읽는 데에는 깊은 뜻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니세의 ‘시’는 어원이 ‘스루’로 어떤 일이나 동작 또는 역할을 하다라는 의미이고, ‘니세’는 ‘니세루’에서 나온 명사로 ‘닮게 함, 흉내 냄’과 같은 뜻이며 본래의 것과 닮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제품의 품질은 물론 창업 정신까지 유지·발전시킴으로써 고객의 신뢰를 잃지 않게 한다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에 노포가 유난히 많은 이유 중 하나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직인職人’에 대한 존경심을 들고 있다. 일본에서는 많은 보통의 회사원은 각자의 분야에서 직인을 목표로 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직인으로서 기技가 최상에 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인’에 대해 최고의 경의를 표하고 있다.
기술자로 출발하여 지금의 혼다자동차를 창업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 씨는 훈장을 받기 위해 천황이나 거래은행장을 만나러 갈 때를 빼고는 누구를 만나거나, 어떤 모임에 가거나 평생 흰색의 작업복만 입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장인의 긍지를 작업복으로 표현한 예이다.
후지대학장인 오야마다 료조(小山田了三) 씨는 『세계를 떠받치는 일본 기술』이란 그의 저서에서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노동을 하층민들만이 해야 할 일로 인식돼 왔으나 일본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최초로 막부를 연 가마쿠라 막부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는 도로공사를 현장에서 직접 감독했으며, 그의 장인인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 또한 인부들과 함께 작업에 참여했고, 본래 축성과 치수治水의 전문가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지금의 구마모토 성을 지을 때 직접 석재를 나르며 일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심지어 어떤 왕은 칼을 직접 다듬었다는 기록도 있다.
가마쿠라 막부 이후 전국시대에 할거한 다이묘(大名)들은 대부분 대규모의 농지를 소유한 지방 영주들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이것이 오늘날 일본 사람들이 노동과 기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발전시켜 가는 사상의 근저를 이루었다고 오야마다 씨는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권력자가 직인들을 이해하고 보호해온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일본인들은 국가나 정부에 대해 높은 신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만담에서조차 “정부가 하는 일이니까 틀림없어.”라는 대사가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노포에는 공통되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이 분야를 연구하는 탁쇼쿠대학의 노무라 스스무 교수는 밝히고 있다. 우선, 가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혈통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족 경영이 많지만 후계자가 반드시 직계 자식이어야 한다는 혈통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데릴사위도 좋고, 또는 가문과 전혀 상관없이 우수한 인재라면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직계 자식을 후계자로 삼을 때도 최고책임자가 되기 전에는 다른 직원에 비해 특별히 우대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무조건 옛것에 집착하지 않고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해 흐름을 탄다. 
셋째는 시대에 대응할 새 제품을 추가하면서도, 창업 때의 주력 가업 부문을 꾸준히 지켜나간다. 
넷째, 시대에 따라 쉬운 재산 증식의 유혹이 많아도, 처음 시작한 본업을 철저히 지켜 사회에 공헌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여 쉽게 돈을 벌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상인의 정의를 행동으로 실천한다. 즉,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 공정과 신뢰를 거래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 상인정신이야말로 기업에 활기를 불어넣은 중요한 요소이다.
“명예는 덕에 종속된다.”라는 말이 있다. 노포에 있어서 명예는 ‘노렌(暖簾)’이다. 노렌이란, 상점이나 음식점의 출입문 위에 옥호를 써 넣어 드리운 발 같은 천을 말한다. “노렌을 지킨다.”라는 말은 고객에 대한 책임의 표현이고, 전통 계승의 의미이다. 노렌은 문풍지에서 그 의미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엄동의 산사에 하룻밤을 신세 지기 위해 든 과객의 방에 문풍지를 발라 찬바람이 새어들지 않게 해준다는 따뜻한 배려로, 자기 가게를 찾는 손님을 온 정성을 쏟아 모신다는 정성의 묵시적 표현이다.
일본에서 노포라고 할 때는 단순히 오래된 기업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당대에 최고의 기技와 진취적인 생명력을 가진 가업 또는 기업, 긴 세월 생존 능력을 증명해 왔고 앞으로도 일본인의 전통과 생활, 그리고 본업에 충실하면서 기술 혁신과 사회 변혁에 앞장설 수 있는 역사의식이 투철한 기업을 말한다.
수백 년 연륜의 기업이라고 하면 우선 비지땀을 흘리며 쇠망치를 두드리는 대장간이나 세월의 때가 찌든 작업장이 연상된다. 제품도 손으로 만들거나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게 고작일 것 같은 감이 든다. 그러나 일본의 노포는 기술도, 제품도, 작업장도 예술적이고 초현대적인 게 한둘이 아니다.
이동전화기(휴대전화기)는 지금 세계적으로 누구에게나 필수품이 되어 있다. 기껏해야 가로, 세로 4㎝, 5㎝에 불과한 화면을 가진 이 요술방망이와도 같은 앙증맞은 기기는 이 시대의 온갖 최첨단 기술을 다 담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기술 중에서도 다른 회사의 기술로 대체가 불가능한 필수 불가결의 몇 가지 기술이 백 년이 넘은 일본의 노포로부터 제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동전화기의 접는 부분에 들어가는 첨단 기술은 환전과 전당포에서 출발해 3천 년의 역사를 맞는 교토의 한 작은 귀금속회사인 ‘다나카귀금속’의 제품이 맡고 있다. 구리나 구리 합금 가루를 씌워 이동전화기에서 새어 나오는 전자파를 차단하는 은 도료와 전화기 내의 배선기판을 극소형화한 기술도 이 회사가 개발한 것이다.
육안으로는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작은 특수 재질의 브러시를 달아 4㎜의 모터를 움직여 신호의 도착을 알려주는 기술은 백수십 년 전에 환전상으로 출발한 도쿄 니혼바시(日本橋)의 어느 작은 노포의 작품이고, 액정 화면에 내장된 극소형 거울은 명치 시대에 램프와 거울을 만들던 시즈오카 현 어느 노포의 기술이다.
이동전화기의 심장으로 대화를 가능케 하는 인공수정발진기人工水晶發振器는 115년의 역사를 가진 가나가와 현 어느 노포 기업이 개발한 기술로, 세계적인 특허를 갖고 있다. 이 인공수정진동기는 이동전화기에서 소리의 진동을 음성으로 바꾸어 대화를 가능케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 없이는 전화기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일본의 소규모 노포가 세월을 두고 개발한 첨단 기술은 이 밖에도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첨단 기기는 물론, 최신 군함과 전투기, 미사일 등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온갖 분야에 필수 부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앞에 나온 다나카귀금속의 경우 전 세계 금극세선金極細線 총수요의 반을 공급하고 있다. 이 금극세선은 컴퓨터 등 첨단 전자제품의 집적회로 접합부에 사용되는 것이다. 1g의 순금이 0.05㎜ 두께의 선으로 3천 미터까지 늘어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다나카귀금속이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시니세의 가훈이나 창업정신은 표현은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오늘날에도 기업 철학의 핵심이 될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몇 가지를 들어보자. “약속을 지키고 거짓말을 하지 마라. 불평과 험담을 하지 마라. 웃는 얼굴로 반갑게 손님을 맞아라. 다른 사람의 즐거움과 슬픔에 동참해라. 옳다고 생각하고 결정한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라.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지 마라. 자기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라. 근검절약하고 많이 베풀어라. 사람을 적재적소에 써라. 종업원을 우대해라. 돈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마라.” 등등…. 
일본의 수많은 시니세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현대말로 기업이지만 그저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그들은 일본 전통의 수호자들이고, 일본 문화의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키는 힘의 원천이며, 일본 상품에 대한 신뢰의 보증인이기도 하다. 수많은 전란과 그에 따른 지배층의 교대, 그리고 경기의 호·불황을 이겨내고 수백 년을 이어온 시니세. 먼 옛날 선조가 단순히 생업으로 시작한 하찮은 일을 시대가 몇십 번 바뀌어도 한눈팔지 않고 고집스럽게 이어가며 발전시켜온 그들 힘의 원천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시니세 몇 곳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공인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시니세는 ‘공고구미(金剛組)’라는 건설회사로, 놀랍게도 서기 578년 백제인이 일본에서 창업한 회사다. 지금으로부터 1430년 전의 일이다. 일본의 기업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공고구미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보고 있다.
대형 사찰을 지어 달라는 일본 성덕 태자의 초청을 받은 백제의 대목大木 유중광(柳重光·일본명 공고 시게미쓰·金剛重光)은 목수 두 사람을 데리고 일본에 건너가 지금 오사카의 사천왕사四天王寺를 건립했다. 578년 사찰 공사를 마치고 세운 회사가 오늘날의 공고구미이다. 완공된 사찰에 만족한 성덕 태자는 사찰의 유지·관리·보수업무를 영원히 유중광 가문에 맡긴다는 특명을 내렸다. 현재 40대 후손이 사장을 맡고 있는 공고구미는 사천왕사 바로 옆 대로변에 사무실을 두고 지금도 업무 분야를 확대하면서 계속 성업 중이다.
이 밖에 718년 이시가와 현 고마쓰에서 창업한 온천여관인 ‘호우시(法師)’는 지금도 창업했던 그 자리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고, 793년 창업해 양갱을 비롯한 화과자(和菓子)를 제조하는 ‘도라야(虎屋)’, 889년 창업의 불교용품점 ‘다나카(田中)’, 1141년 창업의 양조장 ‘수도(須藤)’, 1390년 창업의 다시마 전문점인 ‘마쓰마에야(松前屋)’, 1566년 창업의 침구 전문 제조사인 ‘니시가와산교(西川産業)’, 장유 제조사인 1616년 창업의 ‘히게타장유’, 이 밖에 300년이 넘는 기업으로 부엌용 등 각종 칼 제작사인 도쿄 니혼바시의 ‘기야(木屋)’, 금 세공의 ‘가네다금속’, 제과의 ‘스루가야(駿河屋)’, 된장의 ‘혼다(本田)’와 ‘신슈(信州)’, 오로지 먹만 만들며 400년을 이어온 교토의 어느 장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가 일본 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http://www.sdjs.co.kr/read.php?quarterId=SD200804&num=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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