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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February 25, 2014

그리스의 학문은 우월하다


동아시아를 비롯한 비서양 국가들의 수학은 전부다 대수학 영역에 치우쳐져 있음.

이 대수학이라는 건 말 그대로를 풀이하면 수를 대신한다는 뜻임. 즉 다시 말해 방정식의 x y 같은 걸 생각하면 되겠음.

왜 대수학 영역이 발달했느냐? 이유는 간단.

장사를 하든 공사를 하든 대수학은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 그 때문에 대수학 영역은 문명이 있는 이상

발전할 수밖에 없는 영역임. 그리고 서양에도 당연히 대수학 영역이 있음.


그러나 문제는 동양에는 기하학이 없었음. 서양의 유클리드 기하학이 있는 것과는 반대로 기하학이 전무한 것.

이 기하학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대수학 이야기부터 하겠음.


동아시아 수학이 서양에 뒤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구장산술이니 주비산경이니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를

보았을 것임. 그리고는 동아시아에도 원주율을 구했다느니 방정식이 있었다느니 마방진이 있었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하며 서양수학을 능가한 것처럼 과장하는 글을 많이 보았을 것임.


그런데 이 대수학 영역에서조차 동아시아는 서양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음.

바로 "증명"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임.

니들이 중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웠던 그 증명이라는 걸 생각조차 못한 것임.

이 증명이라는 게 왜 중요한가?


증명이라는 것은 수학 원리, 수학 이론의 논리성, 무결점성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원리를 발견할 수 있고 기존 논리의 정확성과 무결점성을 높이게 된다.

이 증명이란 과정을 고대 그리스 수학부터해서 서양은 매우 중시 여겼다.

공리와 절대적 진리를 구별했다. 공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옳게 여기지만 논리적 증명은 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동양에서는 그냥 바로 진리로 취급할 그럴 성질의 것이지.

이런 것조차도 정확하게 구별해서 서술하고 증명했다는 얘기다.


동아시아 수학은 이런 증명의 과정이 없다. 그 때문에 대수학 영역에서도 수학이라는 말보다는 산술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그런 수준인 것이다. 


가령 원주율 3을 구하는데 있어서 복잡한 수학적 논리나 공식은 필요 없다. 그냥 동그란 원을 그려놓고 그 원의 지름과

둘레의 길이를 비교해보면 누구나 대충 3.xx가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경험적 습득 수준에 그쳤기에 산술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기하학의 경우 동아시아에서는 탄생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이 기하학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 생으로부터 약 1500년이 지난 뒤인 명나라 시절이었다.

마테오리치가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을 들고 오자 그제서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 기하학이라는게 없었던 중국인으로서는 이해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그 기하학의 필요성조차 없다고 여겼다. 이걸 어디에 써먹냐고 거들떠도 안 봤단 거지.

그래서 실제로 기하학 원론이 중국에서 완역된 것은 300년이 지난 1800년대이다.

서세동점의 시대로 서양세력이 동양을 쳐바르기 시작한 그 때서야 부랴부랴 번역을 마친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학문이란 것들은 현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외에는 사실상 볼 것이 없다.

좋게 말해서 현실적이고, 나쁘게 말해서 단순하고 경험적인 그냥 단세포적인 학문 뿐이다.

동아시아인들은 자존심 때문에 최근에 와서야 역전된 걸로 착각하지만,

실상은 처음부터 동양이 서양을 이긴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감정적으로 발광을 하면서 난리를 치는 애들이 있는데

내 글의 요지는 서양님 최고 동양 열등 동양 꺼져가 아니라,

이런 객관적인 열세를 자각한 다음 부족한 부분에 힘을 집중해서 극복해야 된다는 거다.

이런 부족한 부분을 모르고서 자존심만 내세워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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