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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February 26, 2014

유럽나라의 음악은 우월하다



동서양음악의 비교 


- 홍난파


『신동아』 1936년 6월호 


대체 오늘날의 동서양 음악간에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양자간에는 얼마나한 장처(長處)와 단점이 있는가? 이것이 지금 내가 여기서 논구(論究)해 보려는 것이다. 대범 음악에는 반드시 세 가지의 요소가 있다. 세 가지의 요소란 Rhythm(節奏[절주], 韻律[운율], 혹은 律動[율동])과 Melody(旋律[선율], 속칭 曲調[곡조])와 Harmony(和聲[화성])이다. 그리하여 물론 이 세요소가 융합하여 3위 1체가 된 것이라야 완전한 것이라 하겠지마는 때로는 선율과 율동만의 음악도 있고 또 원시적 형태로는 율동만의 음악도 있는 것이다. 


금일 서양의 음악이란 이 세 가지 요소가 구비치 않고는 성립되지 않지마는 그러나 상고 시대의 미개한 인종간에는 율동만의 음악도 있었던 것이다. 율동만의 음악이란 선율이나 화성을 주(奏)하는 악기가 없이 단지 타격악기만의 합주를 말함이니 이것은 마치 조선의 '매구'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동서를 통하여 이 종류의 음악은 극히 원시적이오, 지방적인 까닭에 여기에 논급하지 않거니와 가장 진보된 예술적 음악에 있어서 동서 음악을 비교한다면 그형식에 있어서 서양악은 입체적임에 반하여 동양악은 평면적이다. 이것은 오직 음악에만 국한된 차이점이 아니라 문학에서나 미술에서나 건축에 있어서도 공통되는 최대 차이점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양악은 어떤 일정한 율동에 의하여 각종 잡다한 악기가 선율을 평면적으로 제주하지마는 서양악은 율동이나 선율 이외에 화성이란 음의 일군이 입체적으로 연속 유출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자연히 동양악은 단조에 흐르기 쉬움에 반하여 서양악은 변화성이 풍부하고 하나는 정적이요 보수적임에 반하여 하나는 동적이요 진취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음악의 토대를 이루는 그 율동에 있어서도 동양의 음악(특히 조선 음악)은 대부분이 극히 지완(遲緩)하여 해이하고 퇴영적 기분에 싸여 있지마는 서양의 음악은 특수한 예외를 제하고는 거개 경쾌 장중하다. 뿐만 아니라 동양악은 그 감정 표현에 있어서 몹시도 우회적이며, 표면적임에 반하여 서양악은 단도직입적이요, 삼각미가 있다.


 다시 말하면 동양악에는 애수는 있을 망정 비통한 맛이 적고 장한은 있을망정 정중한 맛은 서양악에 불급하는 감이 있다. 또 작곡상 기교로 말하더라도 자연이나 인생의 묘사에 있어서 선율만으로는 부족지난을 면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동양악은 듣고난 후에 별로이 깊은 인상을 얻을 수없음이 이 또한 평면적이오 표면적인 음악의 흐름에 끝이는 까닭일 것이다. 그 다음 음악의 내용에 있어서는 더욱이나 동양악의 빈약함을 부끄러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고래로 동양악이란 민간에 유행되는 동민요(童民謠)나 속요, 무용 등을 제하고는 모두 이것이 선인, 도사의 천수(天授)의 비법으로나 된 것으로 알아서 거기에다 종종의 인과와 숙명론 같은 억설(憶說)을 부(附)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동소이한 물건에다 허구의 훌륭한 표제만을 걸어 놓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동양악은 그 표제에 나타난 것만 볼 때에는 몹시도 내용적인 것같지마는 기실 하등의 구체적 내용을 갖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는 더구나 막연하여 서양악에서 보는 바 소위 악곡의 형식이란 찾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동양악에 있어서는 그 작곡된 시대를 추구해 보지 않고는 이것에서 고전이니 낭만이니 근대니 하는 판별을 할 수가 도저히 불가능하다. 물론 금일에 남아 있는 아악류(雅樂類)는 그 작곡된 연대로 보아서나 외형에 나타난 형식으로 보아서 거개 고전에 속함이 당연할 것이려니와 인지(人智)가 발달하고 풍습 사상 감정 생활 등이 모두 변천해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음악상에 있어서는 하등변천이나 발달된 형적을 찾을 수 없으며 또 새로이 작곡되는 것도 없으니 이 사실만 가지고 생각하더라도 금일의 동양악은 동양 특유의 사상이나 정조나 내지 문화사적 가치를 가진자로 우리가 세계에 소개하고 자랑할 수는 있다더라도 이것이 곧 우리의 실제 생활에 정응 부화(附化)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음악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하는것을 잠깐 말하련다.  말하자면 서악(西樂)과 동악(東樂)을 물론하고 피차의 장점을 취하여 우리네의 사상과 감정을 토대로 하고 그 위에 새로운 음악을 창설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널리 말하면 신 동양음악(新東洋音樂)이 될 것이요, 민족적으로 본다면 신 조선음악이 생겨야 될 것이다. 수년 전부터 1,2악가(樂家)의 손에서 고래의 조선 민요를 서양 악화(樂化)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나 아직까지 소기(所期)의 결과를 보지 못하였음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서양악은 입체적이요, 동양악은 평면적이다. 다시 말하면 서양악은 마치 서양의 고층 건축과 같고 동양악은 평면적인 단층 건축과 같음으로써이다. 비록 시대가 변천되었다고 한들 단층 건축물을 헐어서 고층 건축물로 개조함이 얼마만큼이나 가능할 것인가. 물론 음악의 소재(素材)되는 음계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과 같이 건축의 소재로는 동일물이라 하더라도 이미 다듬어 놓고 지어 놓은 후에 이것을 근본적으로 개축하지 못함과 일반으로 몇 천 및 몇 백년이 전래하던 자가(自家)의음악에다 일종이양(一種異樣)의 (차라리 이단적인) 화성이란 재료를 가한다고 결코 평면적 건물이 입체화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眞) 소위 욕후면관(浴猴面冠)의 감이 없지 않을지니 이론보다 실제가 잘 증명하는 것은 서양악 식으로 편곡한 재래의 조선악을 다소 양악의 소양을 가진 이가 들을 때는 동양적 색채가 농후하다고 할는지 모르지마는 서양악이란 들어보지도 못하면 조선의 율객(律客)이나 가객(歌客)에게 이것을 돌려 볼때에 그네들은 여기서 추호만치도 조선의 정조는 찾을 수 없다고 말함을 들을 때에 비로서 우리는 조선악의 서양식 편곡이란 사이비의혼혈아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동양악을 비교하던 끝에 편곡 문제에까지 언급함은 저으기 탈선된감이 불무(不無)하나 조만간 우리는 신시대, 신문화인으로서의 새로운 음악을 가져야 될 것이며 이것을 가지려면 어떠한 방도를 취할까가 무엇보다도 선결 문제인 까닭에 이 문제에 대한 두어 마디 우견(愚見)을 말할 것이다. 18세기 말까지도 선진 제국에게 야만시되던 러시아가 19세기 초에 이르러 소위 국민악파의 손에서 신 러시아 음악 창설 운동에 노력할 결과 1세기를 불출하여 세계의 악권(樂權)을 장중(掌中)에 쥐다시피 된 것을 보거나 바하 이전의 독일민족이 불, 이(佛,伊)등에게 역시 야만시되다가 17세기 초에 이르러 바하, 헨델, 모짜르트, 하이든 같은 불세출의 대 악가의 중출(衆出)과 그들의 위업으로 말미암아, 또한 세계적으로 음악국이 되고 음악적 국민이 된 것을 보더라도 우리들 중에는 하루바삐 조선의 바하와 조선의 베토벤이 나서 가장 잘 우리의 심정을 묘출(描出)하고 가장 잘 우리의 감정에 부화(符化)되는 신조선 음악을 창설하지 않고는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가 가져야 될 '참 음악'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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